[한경에세이] 스치는 인연의 깊이

입력 2017-11-12 17:33  

김판석 < 인사혁신처장 mpmpsk@korea.kr >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연’(因緣)만큼 널리 회자하며 시구와 노랫말로 표현된 단어가 있을까. 중국 한비자는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도 만나고),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도 못 만난다)’이라고 했다.

필자는 행정학이란 한우물을 파면서 배우는 학생으로, 가르치는 선생으로,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이와 인연을 맺어 왔다. 교정을 잠시 떠나 국록을 먹게 된 뒤론 사람 만나는 시간과 기회가 더 늘었다. 종종 만남 속에 반가운 옛 인연이 있어 즐겁다. 옛 인연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 잔잔한 기쁨이다.

근래엔 외국인을 많이 만난다. 대한민국 발전상을 보러 온 동남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공무원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발전 경험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는 것과 함께 책임감도 무거워진다. 이에 인사혁신처는 국제기구 고용휴직제도를 통해 다양한 국제기구에 한국 공무원이 진출해 기여하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의 인사혁신을 돕기 위해 우리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계획이다.

최근 기대하지 못한 옛 인연을 만났다. 한국 정부가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신분으로 젊은 시절에 처음 만나 각별한 우정을 나눈 인도네시아 공무원위원장 소피안 에펜디도 있었다. 식민지 아픔을 겪은 개발도상국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는 우리는 행정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국가 발전을 위한 행정학의 역할 제고에 청춘을 바쳤다. 세월이 지나 이제 두 청춘의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각 나라 인사행정을 대표하는 중앙인사 관장 기관의 장이 됐다. 청춘의 인연이 세월이 지나 서로를 돕는 인연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두 청춘의 인연은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 발전 협력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사혁신처와 인도네시아 공무원위원회는 인적 자원 관리·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곧 체결할 예정이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 ‘인연’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다. 스치는 인연은 부지불식간에 다가오기에 지금 이 순간 마주한 사람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하다. 헐벗은 모습으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가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어느덧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나 또한 다른 이의 소중한 인연이 되길 소망해 본다.

김판석 < 인사혁신처장 mpmpsk@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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