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철강·세탁기 압박, WTO 제소로 풀어야

입력 2017-12-28 18:25  

'세탁기 세이프가드' 등 거세지는 미국 통상압력
WTO 제소 등 국제분쟁해결기구 적극 활용
미국 내 네트워크 구축, 자체 통상역량도 강화를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



국제통상체제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업 노조 농민 시민단체 등 통상 이슈를 둘러싼 비(非)정부 국내 행위자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내 정치 환경에서 통상 문제에 대한 정책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각국 중앙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 무역질서를 주도해온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주요 선진국들이 국내 행위자들의 선호와 수용성을 중심으로 통상정책의 ‘내부지향성’을 강화하면서 보호주의적 경향은 이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자리 잡게 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우리나라의 10대 무역 상대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수입 제재 중이거나 제재를 검토 중인 건수는 14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1건이 미국에서 이뤄진 것이고 8건이 최근 1년 새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내린 세이프가드(safeguard·긴급수입제한조치) 권고안은 사실상 삼성과 LG 제품에 대해 경쟁력을 상실한 월풀사가 미국 정부를 끌어들여 만들어 낸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지금 트럼프는 미국의 강력한 힘을 토대로 안보와 경제를 실리적으로 접근하려는 전략적 노선을 취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의 경우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폐기 압력과 원산지 강화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연내 타결을 목표로 했던 일정이 내년 1분기로 변경됐다. 특히 캐나다는 미국 보잉사의 전투기 구매 계획을 철회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NAFTA보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해 통상 전열을 재정비하고 트럼프의 정치 기반을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캐나다와 멕시코의 대응을 참고하면서 미국발(發) 통상 압력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우선 검토해 볼 만한 것이 철강과 세탁기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다. 특히 철강제품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부터 고율의 반(反)덤핑, 상계관세를 잇달아 결정하면서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이 두 제품군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충분한 명분이 축적돼 있고 법률적으로도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 평가다. 다자주의에 회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조차도 한편으로는 중국 캐나다 등 주요 무역 상대국을 제소해 WTO 체제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WTO 제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사회에서 미국 정부를 압박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 우리 기업들도 자체 통상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출 대기업은 정부 대책과 별도로 회사 내에 전문 통상 조직을 꾸리는 등 갈수록 심화될 통상 압력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문제가 불거진 뒤 정부 당국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보다는 평소에 기업 혹은 협회 차원에서 미국 내 주요 고객, 소비자 단체,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문 로펌 및 우호 세력 등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측에 불리한 미국 정부 혹은 의회의 각종 수입제한 조치에 대해 이들 미국 내 네트워크를 활용,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제동까지 걸 수 있는 효과적인 통상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종 무역구제(貿易救濟) 조치를 활용한 일방적 통상 압박과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더해 미국산 무기 구매,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함께 주문하고 있다. 통상과 안보 이슈를 연계해 전방위로 압박하는 미국의 협상전략에 대해 우리 정부 또한 입체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미 동맹관계라는 큰 그림 속에서 ‘중·장기적 이익의 균형’을 가져오려면 FTA 재협상은 외교·안보 차원의 상황과 맞춰가면서도 동시에 WTO 제소라는 양자 간 협상이 아니라 제3의 국제분쟁해결기구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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