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불편 개선하는 서비스도
법에 걸려 '특혜 시비' 논란 불러
한시적으로 인·허가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해야
[ 이승우 기자 ]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정기적으로 수제 맥주와 안주를 배달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벨루가는 규제 때문에 지난해 4개월가량 휴업해야만 했다.
이 업체가 생겨날 수 있었던 데는 규제 완화가 큰 몫을 했다. 국세청은 2016년 7월 음식과 함께 배달되는 주류의 배송을 합법화한다는 주류 고시를 내놨다. 치킨, 족발 등 배달음식을 시킬 때 맥주를 함께 주문하는 소비자가 많아 현실을 반영한다는 취지였다. 벨루가 창업자인 김상민 대표는 규제 완화 소식을 듣고 약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5월 마른안주 등 간단한 음식과 함께 수제 맥주 4병을 한 달에 두 번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쉽게 접하기 힘든 해외 맥주를 보내준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입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커다란 벽에 부딪쳤다. 국세청이 ‘전화로 주문받아 직접 조리한 음식에 주류는 부수해 배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류 고시를 발표한 것.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자 외식업체와 주류회사 등이 국세청에 민원을 강하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벨루가는 직접 조리한 햄버거, 핫도그 등으로 음식 메뉴를 바꿔 서비스를 이어갔지만 결국 휴업했다. 서비스의 초점이 주류에 맞춰져 있어 불법이라는 국세청의 입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 회사는 법률 검토를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야식 배달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를 재개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사업을 시작한 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벽은 정부의 규제다. 소비자들의 불편을 개선하기 위한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빛도 보지 못한 채 ‘불법’ 낙인이 찍히는 일이 다반사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는 공중위생관리법이 막고 있고 소규모 음식 배송 서비스는 식품위생법에 걸린다. 법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으로선 신산업을 재량껏 허용해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자체가 ‘특혜 시비’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계층은 이 같은 규제를 자신들의 세력 유지에 활용하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지나친 규제가 기술 발전으로 결국 사라질 일자리를 보호하고 새롭게 등장해야 할 일자리는 막고 있다”며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기업과 비교했을 때 국내 기업들은 혁신할 기회를 잃는 역차별 문제를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가 원하는 것은 정부의 ‘방임’이다. 현재 허용 가능한 것만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장기적으로 금지 항목을 제외한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되 그때까지는 한시적으로 인허가, 규제 등을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정부는 조정과 타협의 역할을 해야지 기존 편에 서서 혁신을 막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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