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違約罰 약정, 상황 고려해 해석"… '법원 직권감액' 허용해야

입력 2018-03-30 18:57   수정 2018-03-31 05:14

<44> 양해각서(MOU)상 위약금 조항의 법적 성질
(대법원 2016년 7월14일 선고 2012다65973 판결)

서종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대규모 인수합병(M&A) 거래에서는 입찰 절차를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함에도 불구하고 인수가 무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M&A 무산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 사이에서는 M&A가 무산되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기업이 주식 매도자에게 지급한 입찰보증금 등을 몰취(沒取)한다는 취지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입찰보증금이 상당한 거액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사전에 위와 같은 약정을 해놓더라도 막상 M&A가 실패로 돌아가면 이는 입찰보증금을 몰취 당할 사안이 아니라든지, 설령 몰취 당하는 사안이더라도 그 액수를 감액해 달라든지 하는 취지의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를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는지는 MOU 상 약정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이를 당사자들이 합의에 의해 손해배상액을 예정해 놓은 것으로 해석한다면(이하 ‘손해배상액의 예정’)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을 명할 수 있다. 반면 이를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과는 별개로 지급해야 하는 벌금(penalty) 액수를 정한 것으로 해석한다면(이하 ‘위약벌’), 그 약정된 액수가 지나치게 과도해 선량한 풍속에 위반될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법원은 약정 효력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해당 약정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또는 ‘위약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법원 2016년 7월14일 선고 2012다65973 판결’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심은 “3150억원 위약벌 타당” 판단

위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자. A는 기업 인수를 위해 B로부터 X회사 주식을 매수하기로 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하고, B에게 3150억원대의 이행보증금을 지급했다. 이 MOU에는 ‘A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양해각서가 해제되는 경우 A가 기납부한 이행보증금 및 그 발생이자는 위약벌로 B에게 귀속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었다. MOU 체결 후 X회사 노조가 확인실사를 저지하는 일이 발생하자, A는 최종 계약 체결을 거부했고, 이에 B는 위 MOU를 해제하고 이행보증금을 몰취한다는 취지의 통지를 했다. 하지만 A는 오히려 B의 잘못으로 확인실사가 무산된 것이므로 MOU를 해제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이행보증금 반환을 구했다.

이에 대해 원심은 이 사건 MOU의 해제는 A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 때문이라는 전제 아래 “이 사건 MOU 체결 당시 당사자 사이에 계약체결을 강제하기 위해 이행보증금 감액이 허용되지 않는 위약벌로 정하기로 하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할 것이어서, 이 사건 MOU 상의 이행보증금 몰취조항은 위약벌로 봄이 상당하고, MOU 상의 위약벌 약정이 일반 사회관념에 비춰 현저히 공정성을 잃었다거나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해 그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大法 “위약벌 문구, 상황 따라 해석 가능”

하지만 대법원은 위 MOU 상의 조항은 ‘위약벌’이 아니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의 성질을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MOU에는 분명히 ‘위약벌’이란 표현이 사용됐지만, 이를 ‘위약벌’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약금의 법적 성질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즉 계약을 체결할 당시 위약금과 관련해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나 문구뿐만 아니라 △계약 당사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 체결의 경위와 내용 △위약금 약정을 하게 된 경위와 교섭과정 △당사자가 위약금을 약정한 주된 목적 △위약금을 통해 이행을 담보하려는 의무의 성격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경우 위약금 이외에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위약금액의 규모나 채무액에 대한 위약금액의 비율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해액의 크기 △당시의 거래관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위 MOU의 다른 조항들을 살펴보면 A의 귀책사유로 MOU가 해제됨으로써 발생하게 될 모든 금전적인 문제를 오로지 이행보증금의 몰취로만 해결하고 기타의 손해배상청구를 명시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부합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이런 전제하에,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손해배상을 위해 3150억원대의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므로 이를 감액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MOU에 분명히 ‘위약벌’이라고 표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한 것은 민법 제398조 제4항이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당사자들이 ‘위약벌’이라고 표시했더라도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아니라 ‘위약벌’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위 추정을 번복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당사자들이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금전적인 문제를 오로지 해당 몰취 약정에 의해서만 해결하지 않고 다른 구제 수단을 두고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으로 봐 이를 위약벌로 해석한다(대법원 2016년 7월14일 선고 2013다82944 판결).

민법은 ‘손배배상액 예정’으로 추정

당사자들이 명백하게 ‘위약벌’이라고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다른 구제 수단의 존부에 따른 특별한 사정에 의한 추정의 번복’이라는 복잡한 법학적 기교에 근거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해야 법원이 보다 손쉽게 그 액수를 감액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위약벌’에 대해서도 법원에 의한 직권 감액 규정(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위약벌의 경우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달리, 채무자가 위약벌 외에 별도로 손해배상의무까지 부담한다는 점에서 법원의 후견적 개입이 더욱 절실하다. 민법 제398조 제2항이 이미 계약 당사자 간의 현저한 지위 격차 등으로 인한 과도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해 직권에 의한 감액을 허용하고 있는 이상, 위약벌에 대해서도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후견적 개입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 위약벌은 채무이행 확보가 목적… 손배와 달리 감액 불가능

‘위약벌 약정’이란 채무자에게 채무 이행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그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재조치를 미리 약정해 놓는 행위를 말한다. 채무불이행 시 손해배상의 존재와 액수를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손해배상 액수를 정해 놓는 것에 불과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는 차이가 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위약벌 약정의 특성에 착안해 “위약벌의 약정은 채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정하는 것으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다르므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그 금액을 감액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다만 아무리 위약벌의 약정이라도 의무의 강제로 얻는 채권자 이익에 비해 약정된 벌이 과도하게 무거울 때는 일부 또는 전부가 공서양속에 반해 무효로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때도 당사자가 정한 위약벌의 액수가 과다하다는 이유로 법원이 이를 무효로 하는 것은 “사적자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고, 스스로가 한 약정을 이행하지 않겠다며 계약의 구속력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당사자를 보호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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