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쌀 넘긴 농가는 수혜 못 봐
직불금 부담 줄어든 정부 '표정 관리'
쌀값 급등에 소비자 부담 커지는데… 비축미 '찔끔' 푼 정부
격리물량 8만여t 내놔…"17만원 이상 유지 목표"
[ 이태훈 기자 ] 쌀값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 산지에서 거래된 80㎏짜리 쌀 한 가마니는 17만356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0% 가까이 급등했다. 역대 최고인 2013년 10월의 17만8551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비수확기(2~9월) 최고 가격이던 2013년 8월 17만6903원과는 6000원 차이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시장에서 구매하는 가격은 19만원대에 근접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4일 기준 쌀 평균 소매가(80㎏)는 18만7796원이다. 역시 1년 전(14만4412원)에 비해 30% 올랐다.
쌀값 급등은 지난해 벼 생산량이 전년보다 5.3% 감소한 데다 정부가 쌀값을 올리기 위해 시장 격리(수매해 창고에 보관하는 것) 물량을 37만t으로 늘린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쌀값 급등에도 정작 농가 표정은 밝지 않다. 지난해 가을 수확기 농협이나 유통업자에게 넘겨 가격 인상 혜택을 보지 못하는 데다 생산비가 오르면서 농가 실질소득은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어서다. 가뜩이나 생활물가가 올라 가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는 음식점 등은 쌀값 급등으로 재료비 부담까지 더해져 한숨을 짓고 있다.
쌀값이 올라 직불금(쌀값 목표가와 차이만큼 농가에 지원) 부담이 줄어든 정부는 표정이 밝다. 안 그래도 세금이 잘 걷혀 정부 곳간만 두둑한데 직불금 부담까지 줄게 생겼기 때문이다. “쌀값 인상의 최대 수혜자는 정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쌀은 2016년 풍년이 들며 그해 10월부터 산지 가격이 12만원대(80㎏ 기준)로 떨어졌다.
이듬해 7월까지 12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작년 9월 “공공비축미 35만t과 시장격리곡 37만t을 합해 총 72만t의 쌀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 397만2000t의 18%를 정부가 시장에서 거둬간 것이다. 지난해 벼 생산량은 전년 대비 5.3% 감소했다.
물량이 부족해지자 쌀값의 ‘고공행진’이 시작됐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15만원대를 기록했고 2월에는 16만원대, 3월에는 17만원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농민들은 통상 10~11월 수확한 쌀을 농협이나 유통업자에게 모두 팔아버리기 때문에 올해 2~3월 본격화된 쌀값 상승 수혜를 거의 보지 못했다. 지난해 농지 1㏊당 농가 실질소득(직불금 포함)은 720만2882원으로 2016년 740만5897원에 비해 2.7%(20만3015원) 줄었다.
올라간 쌀값은 외식 가격과 장바구니물가에 즉각 반영됐다. 고봉민김밥은 지난 1월 주요 메뉴 가격을 300~500원 인상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즉석밥 ‘햇반’(210g) 가격을 14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 올랐지만 외식물가는 2.5% 상승했다.
반면 농식품부는 쌀값 급등에 직불금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작년 2월 2016년산 쌀에 1조4900억원의 변동직불금을 지급했지만 올해 2월 2017년산 쌀에 지급한 변동직불금은 5392억원으로 작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변동직불금은 쌀 목표가격(18만8000원)보다 수확기(10월부터 이듬해 1월) 쌀값이 낮을 경우 정부가 차액의 85%에서 고정직불금을 제외하고 농가에 지급하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쌀값 급등에 소비자의 불만이 쏟아지자 지난 3일부터 20일간 8만3600t을 시장에 풀기로 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쌀이 한 달에 25만t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열흘이면 소진되는 분량이다. 쌀 유통업자 A씨는 “8만3600t은 가격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값이 작년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평년에 비해선 2~3% 높은 수준”이라며 “17만원 이상 수준에서 쌀값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는 쌀값 상승에 따라 변동직불금 목표가격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농업소득보전법에 따라 목표가격은 5년마다 정해지는데 올해가 새 목표가격을 설정하는 해다. 전농은 목표가격을 24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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