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神들의 섬에서 역사의 발자취를 떠올리다

입력 2018-04-29 15:24   수정 2018-05-02 15:32

고아라 작가의 그리스 섬 여행 (1) 크레타

그리스 크레타 섬

미노아 문명 꽃 핀 크노소스 궁전… 영웅 테세우스가 뛰쳐나올 듯

제우스가 태어난 신화의 땅
로마·비잔틴·오스만제국 거치며
수천 년 다사다난한 역사 견뎌내

구시가지엔 다양한 문화 섞여
쿨레스 요새는 항구도시 낭만이
그리스 대문호 카잔차키스 무덤도




에게해 최남단, 지중해의 태양과 아프리카의 바람이 합쳐지는 곳에 크레타가 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도 다섯 번째로 큰 크레타는 섬 이상의 섬이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가 태어난 신화의 땅이자 전설보다 오래된 미노아 문명을 품은 역사의 무대, 엘 그레코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이 나부끼는 예술의 고향,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이와 꼭 닮은 사람들이 사는 순수의 섬이다. 주도 이라클리온(Iraklion)은 크레타 여행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미노아의 영광이 살아 숨 쉬는 크노소스 궁전, 수천 년의 굴곡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구시가지 골목들, 항구도시의 낭만을 간직한 쿨레스 요새까지. 과거와 현재,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이라클리온에서 크레타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크레타(그리스)=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미노아 문명의 거대한 증거, 크노소스 궁전

크레타는 유럽 최초의 문명이자 그리스 문명의 원형인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의 발원지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000~1500년께까지 가장 크게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중심에 크노소스 궁전(The Place of Knossos)이 있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라클리온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있다. 미노아 문명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노소스 궁지를 발굴하면서 실제 역사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미노아 문명의 최대 증거인 크노소스에 평생을 바친 그의 공로는 크지만, 발굴과 복원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거세다. 정확한 고증 없이 서둘러 복원을 진행해 유적의 상당 부분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로 대체된 목조기둥과 개인적 상상력에 기반해 덧칠된 벽화가 그 예다.


충분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지만 아직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크노소스 궁전은 가로세로 길이가 160~170m에 이르는 거대한 궁전이다.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방이 배치된 정방형 구조인데 설계가 워낙 복잡해 라비린토스(Labyrinth), 즉 미궁의 궁전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서쪽 궁정을 시작으로 왕과 왕비의 방, 대 계단, 극장까지 차례대로 살펴보다 보면 크레타 문명이 얼마나 번영했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문명을 향유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많은 유적 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프레스코화(Fresco)다. 프레스코는 벽에 칠한 회반죽이 마르기 전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고난도의 미술기법을 뜻한다. 크노소스를 대표하는 프레스코화로 백합 왕자(Print of the Lilies), 파리 여인(La Parisienne) 등이 있다. 세련된 색채와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에 마치 수천 년 전의 미노아 시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유적지에 있는 벽화는 복사본이며 진품은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크노소스 궁전에 얽힌 그리스 신화들도 흥미롭다. 제우스와 에우로파 사이에서 태어나 크레타의 왕이 된 미노스, 궁전 지하에 미궁을 지은 다이달로스, 미궁에 갇혀버린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 그리고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궁을 탈출한 테세우스의 일화를 알고 나면 크노소스 여행이 한층 더 풍부해진다.

크레타의 유구한 역사가 한눈에

미노아 문명의 영광이 저문 뒤 크레타의 역사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된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식민 지배와 끊임없는 외세침략을 견뎌야 했다. 다사다난한 역사는 도시 이름의 변천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침략자가 바뀔 때마다 한닥스(Chndax), 칸디아(Candia), 메갈로 카스트로(Megalo Castro), 칸디에(Candiye) 등으로 수없이 바꿔 불리다가 19세기가 돼서야 본래 이름인 이라클리온(또는 헤라클리온 Heraklion)을 되찾았다. 시내에 있는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은 크레타가 지나온 유구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양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 규모와 가치는 그리스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크노소스를 비롯해 페이스토스(Phaistos), 고르틴(Gortyn) 등지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고 싶거나, 미노아 문명에 대해 깊은 탐구를 원한다면 필수로 들려야 한다. 크레타 역사박물관에서는 비잔틴 제국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크레타섬이 지나온 슬픔과 저항의 역사 그리고 크레타인의 생활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전시관도 따로 마련돼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올드타운 탐방

이라클리온은 400년간 이어진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절 가장 큰 변화를 이뤘다. 도시를 에워싼 성벽과 보루, 건축물 등에서 베네치아의 정취가 풍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라클리온은 그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대도시지만 대부분 명소는 구시가지에 모여 있다. 여행의 시작점은 중앙광장인 엘레프테리우 베니젤루 광장(Plateia Eleftheriou Vnizelou)으로 삼는 것이 좋다. 사자상으로 꾸며진 모로시니 분수(Morosini Fountain)가 있어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자광장(Lion Square)으로 통한다. 모로시니 분수는 14세기께 베네치아 지사였던 프란치스코 모리시니(Francesco Morosini)가 설계했다. 분수 바로 옆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로지아(Loggia)가 있다. 반구형의 개방형 회랑과 아름다운 데코레이션이 인상적인 건축물로 크레타에 남아 있는 베네치안 유산 중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본래 르네상스 시대에 귀족들이 모여 사교를 즐기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광장에서 옛 항구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뤄진 8월25일(25is Avgoustou)대로는 이라클리온의 금융을 담당하는 중심거리다. 1898년 터키인들에 의해 수백 명의 크레타 기독교인과 17명의 영국군이 죽임을 당한 크레타 대학살의 아픔이 담긴 길이기도 하다.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야자수가 세워진 아담한 광장과 신비로운 푸른 돔이 올려진 아이오스 티토스 정교회(Church of Agios Titos)가 나타난다. 비잔틴 시대에 건립돼 베네치아 시대에는 가톨릭 성당,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모스크로 사용됐다. 이라클리온의 현재를 보고 싶다면 데달루(Dedalou) 거리가 제격이다. 유명 브랜드숍과 개성 넘치는 편집숍,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재래시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1866거리로 가면 된다. 크레타 전통 기념품과 식료품을 파는 상점과 고즈넉한 카페, 로컬 식당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스식 아이스 커피인 프라페(Frappe)와 달콤한 맛이 일품인 부가차(Bougatsa)는 꼭 맛봐야 한다.


쿨레스를 따라 펼쳐지는 항구도시의 낭만

구시가지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바닷가로 향하게 된다. 옛 항구에 정박한 수백 척의 어선 뒤로 이라클리온의 상징인 쿨레스(Koules) 요새가 보인다. 9세기께 아랍이 크레타를 점령했을 당시 지어진 이 요새는 1523년에서 1540년 사이 베네치아 공화국이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항구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재정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본래 바다의 요새란 뜻의 로카 아 마레(Rocca a Mare)로 불렸지만 오스만 시대를 거치며 터키어인 쿨레스로 명칭이 바뀌었다.

요새는 사방형의 구조로 총 2층, 26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재는 쿨레스의 역사와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옥외 공간에서는 음악회나 각종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쿨레스를 지나 바다 방면으로 약 2㎞가량 뻗어 있는 방파제는 이라클리온에서 가장 낭만적인 산책길로 통한다. 고단했던 지난날은 다 잊은 듯 잔잔하게 일렁이는 에게해의 파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벤치에 앉아 석양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구시가지를 에워싼 성곽 위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4.5㎞가량 이어지는 성곽 위에는 7개의 성채가 있는데 그중 마르티넨고(Martinengo) 성채에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가 있다. 그의 소박한 무덤 너머 펼쳐진 이라클리온과 크레타 해의 전경은 가슴이 뭉클해질 만큼 아름답다.

크레타(그리스)=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메모

한국과 크레타를 잇는 직항은 없다. 아테네에서 비행기 혹은 페리를 통해 들어와야 한다. 이라클리온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라클리오 시내에서 2번 버스를 타면 편리하게 갈 수 있다. 입장료는 15유로, 이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은 16유로다. 크레타 역사박물관과 쿨레스 입장료는 각각 5유로, 2유로다. 동절기와 하절기마다 개장 시간이 다르므로 유적지, 박물관 등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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