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데스크 시각] 자본주의 탈을 쓴 연금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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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7-01 17:58  

[유병연의 데스크 시각] 자본주의 탈을 쓴 연금사회주의

유병연 마켓인사이트부장


[ 유병연 기자 ] ‘연금 사회주의’를 공론의 수면 위로 들고나온 이는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다. 그는 저서 《보이지 않는 혁명: 어떻게 연금 사회주의는 미국에서 일어났는가》(1976년)에서 연금 사회주의론을 설파했다. 국민연금 역할론자들은 현대경영학의 창시자이자 뼛속까지 자본주의자인 드러커가 연금 사회주의를 주창한 사실을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드러커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그는 국민 투자로 얻어진 이익이 연금을 통해 자연스레 국민들에게 귀속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우수성을 역설한 것이다. 그는 오히려 “(연금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카를 마르크스가 엉터리 예언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적시했다.

몰락한 사회주의의 생존 전략

연금 사회주의는 영국 출신 마르크스주의자인 로빈 블랙번의 《새로운 집산주의: 연금개혁, 회색 자본주의와 복합 사회주의》(1999년)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시민단체 일각에서 자주 회자되는 책이다. 블랙번은 연기금의 막대한 적립금을 탈(脫)자본주의 동력으로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오너들의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자는 건 명분일 뿐이다. 막대한 돈(기금)으로 무장한 연금으로 주식회사 지분을 매입해 사회화를 추진하자는 게 숨어 있는 진짜 의도다. 이처럼 연금 사회주의는 몰락한 사회주의자들이 찾아낸 새로운 생존 전략이다. 그 목표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폐기와 사회주의로의 전환이다.

이달 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 주주권 행사 지침) 도입을 앞두고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면 정권이 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는 연금 사회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우가 아니다.

1988년 5300억원에서 시작한 국민연금 기금 운용 규모는 현재 635조원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1500조원)의 43%에 해당한다. 회사 지분 51%를 확보하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술적으로 대부분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를 소유할 수 있는 규모다. 단일 기금으로 국민연금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시급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2043년께 현재의 네 배에 달하는 250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지분을 모두 사들이고도 남는 액수다. 이 돈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일 경우 자본시장은 물론 정·재계의 구조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정부의 손안에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 기금 운용 책임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 선임에도 정부 입김이 미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정권에 국민연금 활용은 선악과처럼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보다 시급한 건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 확보다. 국민연금을 용도 폐기된 사회주의 재건 도구로 키우지 않으려면 말이다. 국민연금 독립성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국민연금 운용을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나서야 한다.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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