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불황수비형 경영으로 전환할 때다

입력 2018-07-12 18:40  

장기불황 요인의 삼각파도 몰려온다
현금 확보로 위험관리한 손정의처럼
장밋빛 기대는 접고 최악을 대비해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우리나라에 사는 쥐는 몇 마리일까? 3일 이내에 알아보자”는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자. 정확한 해답은 없더라도 합리적 추론을 통해서 의사결정의 근거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을 전제한다.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나라를 도시·농촌·어촌 등 유형별로 나눠 샘플조사를 진행해서 추정하거나, 쥐를 먹이로 하는 고양이 숫자를 파악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접했던 가장 탁월한 접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쥐약회사를 찾아가서, 그 회사가 추정하고 있는 쥐 숫자를 알아오겠다”였다. 쥐에 관해 평소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는 접근이다. 엉뚱퀴즈에 압축돼 있는 세상사의 본질은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와 연관돼 있을 때 가장 진지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많은 세상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련돼 먹고사는 사람들이 가장 섬세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작금의 경기전망에 대해서도 소위 정책당국과 전문가들의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과는 괴리가 크다. 각자의 관점과 입장 때문인지 왠지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업종마다 온도 차이는 있겠지만 쥐를 고민하는 쥐약회사처럼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원칙론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우리나라 사업자들의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자영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 규모를 막론하고 매출이 정체로 빠져드는 환경에서 원가 상승 요인은 급속히 늘어나는 것이 본질이다. 대외적으로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으로 촉발되는 세계무역의 위축, 국제 금리와 국제 유가 상승 등에 대내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주당 근로시간 축소, 세금·준조세 부담 증가, 기업 규제 강화 등이 중첩되는 가운데 출산율 추락, 급속한 노령화 등 구조적 장기 불황 요인들의 삼각파도가 덮치고 있다. 과거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2007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종의 쇼크성이었다면 이번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에 비유되는 만성질환의 조짐이 보인다.

디지털 시대를 이끌고 있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20대 초반 벤처기업가 시절 중병으로 2년의 투병생활을 했다. 병상에서 중국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감명을 받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손자병법의 핵심 내용 14문자와 자신이 창작한 11문자를 합친 25문자로 압축했다. 손자와 자신의 성씨가 동일한 손(孫)이라는 점에 착안해 명명한 ‘손의 제곱법칙’은 평생의 경영원칙이 됐다. 손 회장 창작의 정수는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이다. 철저히 1등에 집착하고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읽고 행동하며, 다양한 공격력을 단련하고, 온갖 리스크에 대비해 수비력을 갖춘 후 단독이 아니라 집단으로 싸운다. 이 중에서 리스크에 대비한 수비력의 핵심은 현금 확보다.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손 회장이 일견 무모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한 계산과 충분한 현금 조달로 리스크를 관리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수비력의 핵심은 현금 조달력이고, 특히 불황기의 현금 확보는 리스크 관리의 요체였다. 호황기에는 자산 확보에 주력하지만 불황기에는 현금 확보가 우선이라는 경영관리의 원칙을 일깨우는 사례다.

최악을 우려하는 것과 최악을 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려는 걱정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바라지 않는 심리적 태도이지만, 최악의 가정은 현실적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책을 마련해 두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보통 생각하기도 싫은 나쁜 상황을 애써 외면하거나, 상황이 닥치면 그때 가서 대처하겠다는 식으로 미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업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책을 미리 구상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위기라고 부르는 긴급한 상황은 평상시의 연장선이 아니라 현실의 단속점에서 생겨난다. 예기치 않은 사고, 분쟁, 정책 변화로 사업이 근거하는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장밋빛 기대를 잠시 접어두고 불황대응형 경영으로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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