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 양반들도 장비 욕심… 문방사우 名品 경쟁했다

입력 2018-07-19 18:32  

조선의 잡지

진경환 지음 / 소소의책 / 396쪽│2만3000원



[ 서화동 기자 ]
카타르 도하의 전통시장에는 살아있는 매를 전시, 판매하는 큰 상점이 있다. 수십 마리의 매가 홰에 앉아 있는데, 한 마리에 수천만원부터 수억원까지 다양하다. 매를 키우는 것이 아랍 부호들의 고급 취미여서다. 3층짜리 매 전문병원까지 있다. 18~19세기 조선시대 양반들의 호사스러운 취미생활도 이에 못지않았다. 대상은 비둘기였다.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가 여덟 종류나 됐고, 서울의 부유한 양반들은 누가 더 희귀하고 비싼 비둘기를 많이 사들이느냐를 놓고 경쟁했다. 수천전(錢)을 들여 ‘용대장’이라는 여덟 칸짜리 비둘기집에 종류별로 비둘기를 들여놓느라 바빴다. 가장 비싼 ‘점모(點毛)’라는 비둘기는 한 쌍에 100문(文)을 넘기도 했다. 100문이면 1000전, 정조 때 공물로 바치던 녹용 한 대가 200문 정도였으니 얼마나 고가의 취미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조선의 잡지》는 이처럼 실감나게 조선 후기 풍속을 보여준다.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를 통해 조선 후기 양반들의 소소한 일상과 사회 풍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책 부제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인 이유다. 제1권 풍속, 제2권 세시 편으로 구성된 《경도잡지》는 각권을 19개 항목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는 풍속 편의 19개 항목을 의관과 행차, 호사스러운 취미생활, 식도락, 유희 등의 주제로 나눠 당대의 사회상과 심리를 들여다본다.

조선은 모자의 나라로 유명했다. 머리에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양반도 마찬가지였다. 복건, 방관, 정자관, 동파관 등 종류도 다양했고 때와 장소에 따라 구분해 써야 했다. 그중 복건은 검은 헝겊으로 위는 둥글고 삐죽하게 만들고 뒤에는 넓고 긴 자락을 늘어지게 댄 쓰개였다. 그런데 복건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분분했다. 퇴계 이황은 복건을 중들이 쓰는 두건과 같아서 선비나 학인이 쓰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약용은 복건이 중국 진나라 때부터 사부의 복장이 됐고 주자에 이르러 예복이 됐으며 송대에는 유학자들이 널리 애용했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 선생의 초상은 두건을 쓴 모습이다. 저자는 근거가 없어보이는 그림이라고 지적한다.

“옥장도 대모장도 빛 좋은 삼색 실로 꼰 술 푼 술 갖은 매듭 변화하기 측량 없다.” 한글 장편 가사 ‘한양가’의 한 대목이다. 호신용 칼인 장도의 칼자루와 칼집을 만드는 데 쓰인 재료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은은 물론이고 옥, 코뿔소의 뿔, 바다거북의 등딱지, 침향과 화리, 검은물소 뿔 등 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희귀 재료들로 치장해서 여성은 물론 남성도 차고 다녔다고 한다. 허세를 부리기로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말을 타고 외출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경도잡지》에는 붉은 말, 밤색 말,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말 등 다양한 말의 종류를 예시하면서 “말을 타는 사람은 보통 견마잡이를 오른쪽에 두는데 당상관은 왼쪽에 하나 더 세운다”고 했다. 오죽하면 ‘말 타면 경마(견마)잡히고 싶다’는 속담까지 생겼으랴. 말의 주인이 견마잡이로 위엄을 과시하니, 견마잡이들도 덩달아 허세를 부렸다. 서로 더 좋은 고삐를 가지려 했다. 질 좋은 매끈한 가죽으로 만들어 번쩍번쩍 광을 내고 거들먹거렸다는 것이다. 견마잡이를 ‘거덜(巨達)’이라고도 불렀는데 허세를 부리다 망하는 것을 ‘거널났다’고 하는 것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견마잡이에 끌려다니던 말은 위급할 때도 끌지 않으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전투에서 반드시 패하는 길이다”고 꼬집었다.

과거급제자 신고식도 요란했다. 사흘 동안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광대놀음을 비롯한 온갖 잔치를 벌이느라 허리가 휠 정도였다. 또한 먹을 얼굴에 칠하고, 먹물을 먹이고, 온 얼굴에 먹칠을 해서 조리를 돌리는 등 악행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붓, 벼루, 먹, 종이 등 선비들의 문방사우도 명품 경쟁에서 빠지지 않았다. 《경도잡지》에서 유득공은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낭미필을 최고로 쳤다. 청나라에 선물로도 보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낭미필을 혹평했다. 굳세며 억세고 뻣뻣해서 철없는 아이 같다고 했다. 종이는 눈처럼 하얗다고 해서 ‘설화지’를 최고로 쳤다.

열대성 식물인 소철이나 종려 등을 키우기 위해 1450년 의관 전순의가 《산가요록》에서 제시한 온실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조선의 온실은 양지바른 곳에 땅을 파고 집을 지은 다음 기름종이로 지붕을 덮고 온돌을 놓은 구조였다. 오늘날의 비닐하우스와 흡사하다. 광해군 때의 이충이란 신하는 온실에서 각종 채소를 키워 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책에는 이 밖에도 당시 양반들이 즐겼던 화훼 재배와 정원 가꾸기, 담배와 술, 음식, 여가생활, 문화생활 등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 멋진 글씨와 그림 등 고상한 예술부터 투전판의 타짜들까지 당대의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면 더위를 잊을 만하겠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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