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유럽행 '황금 비자'

입력 2018-07-31 19:02  

고두현 논설위원


경제 파탄과 물가 폭등에 시달려온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재산을 정리해 나라 밖으로 탈출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는 언어와 문화권이 같은 스페인이다. 최근 2년 사이에만 14만여 명이 몰렸다.

이들이 스페인을 택한 주된 이유는 ‘황금 비자(golden visa)’에 있다. 스페인은 2013년부터 50만유로(약 6억5600만원) 이상의 부동산을 산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주고 있다. 이를 받으면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통화 가치 급락 등의 위험에 대비해 재산을 안정적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에 옮겨두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포르투갈도 50만유로가 넘는 부동산에 투자하면 ‘황금 비자’를 준다. 제도를 시행한 2012년 10월 이후 2년 만에 1500여 명이 이를 받았다. 그 덕분에 외국 자본이 몰리면서 재정위기 여파로 위축됐던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다.

돈을 받고 아예 국적(시민권)을 파는 나라도 있다. 주로 그리스 헝가리 등 경제난을 겪은 나라들이다. 작은 섬나라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는 최근 4년간 시민권 판매로 40억유로(약 5조2500억원)가 넘는 수익을 냈다. 키프로스의 부동산 취득액 기준은 200만유로(26억원)로 높은 편이다.

국적 취득에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나라는 오스트리아로 2000만유로나 된다. 우리 돈으로 260억원을 내고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해야 한다. 비싼 이유는 익명성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엄격해 시민권 취득 사실을 감출 수 있다. 그래서 불법자금이나 억만장자들의 해외 도피처로 쓰이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쪽 섬나라 몰타에서 시민권을 얻는 데에는 115만유로(15억원)가 필요하다. 65만유로를 현금으로 내고, 35만유로 이상의 부동산을 사야 한다. 15만유로를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한 뒤 5년 이상 유지하는 조건도 따른다.

이 같은 ‘국적 장사’는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고육지책이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는 이른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에서 일자리를 찾아 중남미로 옮겨가는 이민자가 줄을 이었다. 그러다 중남미 경제가 나빠지면서 ‘유럽행 황금 비자’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전통적인 국적 부여 기준은 혈통 중심의 속인주의와 출생지 위주의 속지주의다. 이제는 투자주의까지 더하게 됐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2010년부터 5억원을 기준으로 시행한 ‘제주도 부동산 영주권’에 중국인이 몰려 거주비자 발급 건수가 1500건에 이른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기회가 많고 미래가 밝은 곳으로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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