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한국 경제가 처한 운명 보여주는 '솔개 우화'

입력 2018-11-04 17:36  

부리·발톱 무뎌진 늙은 솔개 같은 우리 경제
투자·혁신은 지지부진, 노동경쟁력도 급락
설익은 대증요법 대신 민간 활력 지원해야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70년을 살 수 있다는 솔개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육식성의 사나운 조류로, 맹금류에 속하는 솔개는 40년이 넘으면 깃털이 무거워져 높이 날지 못하고, 부리와 발톱마저 무뎌져 사냥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솔개는 이즈음에 수명을 다하지만 일부는 변신을 통해 70년까지도 살아남는다. 그러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낡은 부리를 바위에 쪼아 부수고 새 부리가 자라면 이번에는 그 부리로 닳은 발톱을 뽑아낸다. 그리고 새 발톱으로 무딘 깃털을 뽑아 가볍고 민첩한 날개로 재무장한다. ‘혁신(革新)’의 원래 의미처럼 ‘자신의 가죽을 새롭게 바꾸는’ 고통을 거쳐 새롭게 변신한 솔개는 새 무기로 사냥을 즐기며 70년까지도 살아간다는 얘기다.

실제로 솔개가 이런 환골탈태를 통해 몇십 년을 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비록 사실이 아니라도 솔개 우화(寓話)는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반세기 동안 성장을 주도해온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구조조정과 첨단화가 지체되면서, 낡은 솔개의 부리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화려한 성장 신화를 이끈 기업가의 도전과 개척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고, 투자와 혁신도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오히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더욱 강화됐고, 노동의 경쟁력도 크게 저하됐다. 최빈국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를 성취했던 정부의 정책 역량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부리와 발톱이 무뎌지고 깃털이 무거워져 사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40년 된 솔개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 경제는 지금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실업 관련 통계는 연일 최악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투자와 소비, 가계 부채 등 주요 경제 지표가 모두 적색경보를 울리고 있다. 경기선행지표마저 17개월째 하강세를 보여 단기에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세계적인 메가트렌드를 외면하는 기득권층과의 갈등으로 규제 철폐와 혁신 성장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반도체에 의존한 수출과 과거 흑자로 쌓은 외환보유액만 건전한 상태를 유지할 뿐, 어디에서도 경제의 청신호를 찾기 힘드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대외 여건이 곧 호전될 것 같지도 않다. 미국과 중국의 마찰은 물론 보호무역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금리 인상의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국제금리의 상승과 동조해야 하지만 가계부채와 경기침체에 미칠 부작용을 간과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금리 동결로 인한 자금 유출 위험을 그저 방치할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주력 산업 첨단화와 고용창출, 투자 활성화, 자본시장 안정화 등 당장 불을 꺼야 할 시급한 과제가 너무 많다. 가장 중요한 출발은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 경제가 추구해야 할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지금은 비전이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고 전문가들도 의아해하는 설익은 임기응변식 정책이 주도할 따름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의 접근방식을 바꾸고 경직된 제도와 정책을 과감히 혁신해 누구나 이 땅에서 신나게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그 생태계가 뿌리부터 훼손되고 있으니 어떻게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은 여건에서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하지 않는가. 정부가 세금을 풀어 고용과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만으로는 결코 지속적인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해야 고용과 복지를 해결할 수 있다.

사냥을 못하는 솔개에게 먹이만 나눠준다면 어떻게 환골탈태의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길들여진 솔개는 우선은 연명하겠지만 영원히 다시 날 수 없을 것이다. 반세기 만에 한국 경제의 성장이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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