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뒤늦게 아파트 당첨 취소 속출…청약시장에 무슨일이

입력 2018-11-16 08:17  

정비사업 '1순위 부적격' 전수조사…공급계약 무더기 해지
조합 "계약금 못 줘" 소송전 양상…난수표 청약제도 '촌극'




서울 흑석동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우편물을 받았다. 1년 5개월 전 청약에 당첨돼 분양받은 아파트의 계약이 해지됐다는 통지문이다. 이 아파트 재개발조합은 A씨가 부적격 자격이었던을 점이 뒤늦게 발견됐다며 공급계약을 즉시 취소하는 한편 계약금 또한 돌려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A씨는 입주 1년을 앞둔 새 아파트를 눈앞에서 날리게 됐다. 계약금 수천만원도 잃을 처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뒤늦게 “당첨 취소” 속출

16일 주택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 내 재개발·재건축 단지 일반분양 청약에 당첨됐다 취소되는 사례가 이달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영등포구 강남구 양천구 등 최근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지역들에서 당첨 취소 사례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영등포구의 경우 신길뉴타운 안에서만 5명의 부적격 당첨자가 나왔다. 신길뉴타운5구역(‘보라매SK뷰’)과 12구역(‘신길센트럴자이’)이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에서 공문이 내려와 주택법 위반 당첨 사례를 조사하던 중 청약 1순위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당첨자들이 새로 발견됐다”며 “부적격 당첨자에 대해서는 해당 조합에 공급계약 취소 등의 조치를 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각 구청에 따르면 이번에 일반분양 당첨이 취소된 이들은 모두 ‘1순위 청약 5년 제한’ 요건에 걸렸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조합원으로 이미 분양신청을 마친 이들이 5년 안에 다른 정비사업 일반분양 1순위로 당첨됐다는 의미다.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과거 5년 동안 주택 당첨 사실이 있거나 그런 세대에 속할 경우 투기과열지구 또는 청약과열지역(조정대상지역)에서 1순위 청약이 불가능하도록 근거를 두고 있다. 조합원 분양신청 또한 당첨으로 간주해 5년 내 1순위 청약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분양업계는 물론 정비사업 조합에서도 이 같은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당첨자 선정 단계에서 1순위 자격 여부를 검증해야 하는 건설사, 조합 모두 부적격 여부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 최근 뒤늦게 당첨 취소가 속출하는 이유다. 한 조합 관계자는 “구청 공문을 받고 당첨자 명단을 대조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1순위 청약 5년 제한은 2016년 ‘11·3 부동산 대책’ 때 도입됐다. 이 제도 시행이후 조정대상지역에서 입주자 모집승인신청을 한 단지들이 1순위 제한 규정이 적용된다.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부적격 당첨자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계약금 못 돌려줘”…구제 가능할까

행정 착오로 졸지에 아파트를 날릴 처지에 놓인 당첨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보라매SK뷰에 당첨됐던 B씨는 “사업주체들이 자격 요건 검증에 대한 과실을 저질러놓고 1년 반 만에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를 해와 황당하다”며 “서류를 위조하거나 불법 전매를 한 것도 아닌데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B씨의 경우 토지지분을 소유 중인 한 재개발구역이 2015년 첫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서 정비사업 당첨 이력이 생긴 경우다. 조정지역에선 2020년까지 1순위 청약이 불가능했지만 B씨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난해 보라매SK뷰에 청약했다. 금융결제원의 청약 홈페이지인 아파트투유에서도 별다른 제한 요건이 없다고 나온 데다 당첨 후 계약 과정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입주를 1년여 앞두고 집들이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계약이 해지되면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B씨가 더욱 분개하는 건 조합이 계약금까지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를 분양받은 그는 계약금으로 6700만원을 냈다. 총 분양가의 10%다. 중도금 대출에 대한 이자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무형의 금전적 손실은 더욱 크다. 청약통장은 이미 써버렸고 4억원가량의 프리미엄도 사라졌다.

그러나 조합은 강경하다. 부적격 당첨으로 인한 계약 해지이기 때문에 계약금은 모두 조합에 귀속된다는 입장이다. 신길5구역조합 관계자는 “불법거래로 인한 계약 해지자들도 상당해 현재로선 구제할 계획이 없다”며 “일부는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2차 내용증명까지 보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부 해지자들은 조합에 수의계약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은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가구들을 보류지로 처분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류지란 정비사업에서 분양을 하지 않고 남겨두는 ‘비상용 주택’을 말한다. 사업 마무리 단계에 입찰을 통해 판매한다.

법조계에선 계약 해지가 번복되긴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당첨자와 사업주체 모두 부적격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일단 관계 법령에 근거가 있어서다. 하지만 계약 해지자들이 계약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기형 법무법인 명성 대표변호사 “계약금 몰수는 법령이 아닌 공급계약서 상의 위약금조항이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면 감액이 가능하다”면서 “이 경우 법원이 계약 위반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감액을 결정하는데 자격 요건에 대해 조합에서도 사전에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액의 소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 역시 “계약 위반에 대한 당첨자의 귀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액이냐 일부냐의 문제이지 계약금을 상당 부분 돌려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난수표 청약제도가 원인

전문가들은 복잡한 청약제도가 이 같은 촌극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청약제도는 초보자들에겐 난수표에 가깝다.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이 필요한 사안도 한둘이 아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법 제정 후 40년 동안 138차례 개정됐다. 1년에 3.45번 꼴이다. 국토부 담당 직원들도 헷갈릴 정도다. 유권해석을 할 때마다 모호한 경우가 계속 생겨나 민원을 접하면서 정하거나 배우는 게 현실이라고 국토부 담당자는 토로한다. 당장 이달 말에도 한 차례 개정·시행될 예정이다.

예비 청약자들이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국토부에 청약제도를 담당하는 직원은 두 명뿐이다. 하루 평균 300통 이상의 민원 전화와 회의에 시달린다. 전화를 걸어도 잘 연결되지 않는 이유다. 이마저도 수시로 담당 직원이 바뀐다. 금융결제원 청약실엔 10명의 담당자가 근무하지만 유권해석을 해줄 권한은 없다.

이기형 변호사는 “자격 요건과 관련한 내용들은 전문가들이 연구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며 “청약 시점부터 필터링이 가능하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억울한 부적격자 발생을 줄이거나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아파트투유 전산화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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