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경제팀이 '위기 비상벨' 울려라

입력 2018-11-19 17:59  

"정부 부인에도 시장엔 위기감 커
위기 경고하고 만반 태세 갖춰야
진짜 닥친 뒤엔 비상벨 소용없어"

차병석 편집국 부국장



[ 차병석 기자 ] ‘위기가 닥칠 거라는 걸 안다면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굵직한 위기 수습을 도맡아 ‘대책반장’이란 별명까지 달았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지론이다.

그의 말대로 위기를 예측했다면 대비해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위기를 진짜 당하는 건 예측하지 못했거나, 뻔히 다가오는데도 방심했을 때다. ‘이번엔 과거와 다르겠지…’ ‘경제위기까지는 안 갈 것이다’라는 식의 안이한 예측과 근거 없는 낙관이 경제위기를 불렀다는 건 세계 경제사가 증명한다.

한국 경제에 위기 경고등이 계속 켜지고 있다. 생산 고용 투자 소비 등 발표되는 경제지표마다 외환위기 이후 최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이래 최악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산업의 기둥이던 조선은 침몰한 지 오래고, 자동차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던 반도체 수출도 꺾일 기미다.

경제가 나아질 실마리는 찾기 어렵다. 막대한 수출 피해를 초래하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개혁도 막막해 4차 산업혁명이 위기 돌파구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금리인상은 시기를 놓쳤고, 재정 정책으로 정부가 예산을 푼다지만 근본 대책은 될 수 없다. 내년 1월부터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처벌 유예기간을 끝내고 본격 시행된다. 최저임금도 올해 16.4% 인상에 이어 10.9% 더 오른다.

외국계 펀드들은 중국보다 한국을 더 위기로 보고 주식을 팔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코스피지수 하락폭(13.4%)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아르헨티나 주가 낙폭(12.1%)보다 컸던 이유다. 국내에서 절망하고 떠나는 기업들로 올 상반기 제조업 해외직접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55% 늘었다. “1997년과 2008년은 외환·금융위기였지만 지금은 실물이 어렵다. 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란 우려가 대통령 자문역인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입에서 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정부는 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기자들에게 “한국 경제는 일부 거시경제 지표에서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로서 위기나 침체라고 진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위기를 언급하면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가 고조돼 위기를 부채질할 것이란 걱정을 했을 법하다. 그의 위기 시인은 정부가 밀고 온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격이어서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위기를 부인할수록 시장은 더 불안해하는 형국이다. 정부 말고는 모든 경제주체가 ‘어두운 먹구름’이 다가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다. 20여 년 전 안팎의 위기 경보에도 “아직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정부 말을 믿었다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트라우마가 있어 더욱 그렇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강해진 기업은 삼성전자다. 이 회사의 성장 비결 중 하나가 ‘상시 위기론’이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순간에도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금이 진짜 위기”라고 말했다. 어려우나 좋으나 항시 위기를 대비하고 긴장의 끈을 조였던 게 오늘의 삼성전자를 키워낸 원동력 중 하나였다. 나라경제 운영이 기업 경영과 똑같을 순 없지만 참고는 할 만하다.

정부가 위기론을 부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위기를 선제적으로 경고하고 경제주체들에게 고통분담과 협력을 당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과 국민이 비상한 각오를 다지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폭주하며 개혁을 가로막는 민주노총을 설득할 명분도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 2기 경제팀이 진지하게 검토해 봄직한 ‘역발상 카드’다. 위기가 닥친 뒤엔 아무리 비상벨을 울려도 소용없다.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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