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시작되는 곳, 페루 탐보파타에서 야생의 끝을 보다

입력 2018-11-25 15:04  

여행의 향기

류진의 와일드, 노마드, 라이프 (1) 페루 탐보파타, 웰컴 투 정글!

기이한 새 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달빛…'五感 짜릿' 정글 밤산책



대자연을 흠모하지만 아마존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적은 없다. 밤새 귓가에서 ‘왱왱’대는 모기 한 마리, 불시에 출몰하는 바퀴벌레에 이성을 잃는 일개 도시인에겐 아득한 꿈이다. 그런 곳은 베어 그릴스(생존 다큐멘터리 ‘맨 vs 와일드’의 진행자이자 영국 특공대 출신 생존 전문가) 정도는 돼야 갈 수 있지 않을까? 만지기만 해도 독성이 퍼지는 나무, 타란툴라를 먹어 치우는 군대개미의 습격 따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은 없으니까.

아마존의 물줄기가 지나는 나라를 방문한 김에 찾을 수는 있다. 총길이 6500㎞에 달하는 아마존강 본류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브라질 등 남아메리카 대륙을 걸쳐 흐른다. 대부분 지류가 합쳐지는 브라질을 아마존 탐험의 거점으로 떠올리지만 일반인에게 좀 더 만만한 접근법은 따로 있다. 마추픽추와 나스카 라인을 품은, 아마존 말고도 볼 게 많은 나라, 페루를 찾았다.

아마존으로 향하는 낮은 문턱, 푸에르토말도나도

브라질이 아마존 강줄기의 끝이라면 페루는 시작이다. 안데스 고원과 아마존 분지가 교차하는 지역, 푸에르토말도나도가 바로 아마존의 발원지. 서울에서 리마까지 약 하루, 리마에서 쿠스코를 거쳐 푸에르토말도나도까지 2시간30분, 도합 이틀에 가까운 여정을 견딜 인내와 체력만 있다면 아마존 탐험은 지리산 둘레길 걷기보다 쉽다.

‘쉽다’는 말은 주관적 의견이 아니다. 푸에르토말도나도에 있는 탐보파타 국립자연보호지구(이하 탐보파타) 안에서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여섯 살 먹은 어린 소년, 일흔은 족히 넘은 노인 부부, 고어텍스는커녕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차림의 젊은이들. 이들과 내가 지구 최대의 열대 우림을 동네 뒷산 산책하듯 누빌 수 있었던 건 탐보파타 안에 들어선 리조트, 잉카테라 레세르바 아마조니카 덕이다. 호텔 예약 웹사이트에서 보호지구 안에 들어선 숙소를 고르면, 나머지 여정은 호텔과 리조트의 몫. 대부분의 숙소가 푸에르토말도나도 공항 픽업, 독충으로부터 안전한 잠자리, 삼시 세끼, 목숨을 위협하는 야생 짐승과 식물을 피해 ‘아마존 정글’을 탐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필드 가이드를 제공한다. 당신이 야밤에 몽유병 환자처럼 홀로 정글 안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당’이 당긴다는 이유로 달콤한 향을 풍기는 정체 모를 열매를 따먹거나 굶주린 피라냐와 아나콘다가 유영하는 강에 발목을 담그는 기행을 하지 않는 이상 아마존은 일상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안락한 휴양지가 돼준다.

자연 다큐멘터리, 탐보파타 국립자연보호지구

탐보파타 입성은 쉽지만 그 안의 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연 과학자들은 이곳을 야생 중 야생으로 꼽는다. 실제로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 BBC 자연사 팀의 수석프로듀서 마이클 브라이트가 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1001》에선 탐보파타에 서식하는 조류가 1300여 종, 하루에 볼 수 있는 새가 331마리(조류 탐사 대회 공식 기록)에 달한다고 전한다.


탐보파타에 서식하는 새 중 꽃은 앵무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앵무새의 10%, 32종의 앵무새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마스코트는 마코 앵무. 조류 학자 사이에선 ‘흙 파먹는 새’로 불린다. 먹을 게 없어서 흙을 파먹냐고? 아마존 우림에 널린 게 앵무새의 주식량, 열매다. ‘탐보파타 마코 프로젝트’를 이끄는 조류학자 브라이트 스미스는 이 행각을 ‘강가 진흙에 함유된 염분을 섭취하기 위한 생존 기술’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아마존 강가의 뭍에선 흙에 부리를 콕콕 박는 마코 앵무 떼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마존과 한 몸처럼 따라붙는 이름, 피라냐와 아나콘다도 물론 여기에 산다. 다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나콘다는 차치하더라도 굳이 이 육식성 물고기를 만나고 싶다면 ‘피라냐 낚시’를 해볼 수는 있다. 물론, 반드시 전문 가이드와 함께.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혹은 자신의 피와 찢긴 살점을 목도할 수도 있으니까.

흉포한 동물만 사는 건 아니다. 다람쥐 같은 아구티, 조물주가 모든 동물을 창조하고 남은 걸로 대충 빚어 만들었다는(못생겼다는 뜻이다) 테이퍼는 도시의 길고양이만큼이나 자주 마주친다. 운이 좋으면 대수달, 나무늘보, 옆목거북 등 진귀한 동물들의 사적인 순간도 훔쳐볼 수 있다.

캐노피 위에서 마주하는 미지의 세계

해가 있을 때, 탐보파타를 탐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저지대를 두르는 둘레길, 아나콘다가 출몰하는 습지 위에 낸 판자길, 평소엔 발목, 우기엔 무릎 아래까지 푹푹 잠기는 진흙길을 직접 걸으며 곤충과 풀, 나무, 열매, 동물들을 코앞에서 관찰하는 트레킹을 한다. 해가 뜨겁지 않은 아침이나 노을이 지는 석양 무렵 카누 위에서 우림을 관망하거나 배를 타고 수면 위에 눈알만 내놓은 돌악어(또는 ‘카이만’으로 불린다), 담수어 등을 관찰하는 것은 좀 더 편하다.


가장 안전하며 동시에 흥미로운 탐험은 열대 우림의 허공을 가르는 길, 캐노피 위에 있다. 지상에서 25~45m까지 자란 나무의 윗부분, 무성한 잎과 가지가 한데 엉킨 10m 높이의 층을 뜻한다. 탐보파타에 도착한 정글 초보자의 첫 모험은 캐노피 사이에 낸 다리를 걷는 일이었다.

캐노피 걷기는 단순히 높은 지대에서 숲을 조망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캐노피 생물학자 마거릿 D 로우먼은 저서 《웰컴 투 정글》에서 ‘현재 지구상에 존재 가능성이 있는 3000만 종의 생물 중 150만 종에 대한 목록만 정리된 상태이며, 캐노피엔 인간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의 절반가량이 서식한다’고 말한다. 나무의 정수리 위에 형성된 지대는 확실히 땅보다 더 습하고, 무덥고, 얼굴로 달려드는 벌레떼들이 득시글했다. 그 훼방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직 이름조차 갖지 못한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감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본 것이 미확인 생명체인지 알아차릴 리는 만무했지만.

타란툴라, 나무늘보 등 밤의 생물 기지개

땅거미가 내리면 밤의 생물들이 기지개를 켠다. 익룡처럼 요란하게 울부짖는 새소리가 잦아지고 밤 산책이 시작됐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필드 가이드와 함께. 야밤의 우림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타란툴라였다. 아마존에 오지 않았다면 타란툴라가 보송보송한 털을 가진, 가늘고 긴 다리로 우아하게 걷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저 이빨에 독을 숨긴 해충의 왕이라는 인상 대신 말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곤충 몇 마리를 지나 잎에 매달려 잠을 청하는 모르포 나비의 기이한 자태를 관찰하는데, 허공에서 나뭇잎 몇 장이 떨어졌다. 필드 가이드의 눈동자가 빠르게 어떤 움직임을 쫓는다. 재규어인가? 어젯밤 이곳에 사는 가이드들의 ‘재규어 무용담’을 들은 터라 덜컥 겁부터 났다. 그 와중에 사망 보상금이 가장 높은 여행자 보험을 들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가이드가 굳은 얼굴을 풀고 플래시를 비춘 곳엔 다행히 재규어는 아닌 게 분명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나무늘보예요. 발가락이 3개인 세발가락나무늘보, 2개인 두발가락나무늘보가 있는데 저 친구는 두발가락이네요. 하루 18시간 정도 자는데, 야행성이라 지금은 신나게 놀고 있어요.” 가이드가 빛을 흔들든가 말든가, 그 ‘덩어리’는 일체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 느린 것이 제 딴엔 있는 힘을 다해 인간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중일 수도 있지만.

길의 끝에서 앞을 비추던 플래시가 꺼졌다. 칠흑 대신 달빛이 어렴풋이 시야를 밝힌다. 잘 보이지

으니 냄새와 소리, 촉감이 선명해진다. 야생 짐승의 짙은 몸 냄새, 새인지 곤충인지 모를 것들이 우는 소리, 흙과 잎, 열매가 내뿜는 단내, 아마존의 배경음악(BGM)처럼 늘 귓전을 따라다니는 모기 날갯짓 소리, 긴장감으로 붉어진 뺨을 식히는 서늘한 젖은 공기…. 살면서 온 감각이 이렇게 활짝 열린 적이 있었나? 서울에선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 때문에 늘 실패했던 명상,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기’가 절로 이뤄지는 순간이다.

일상에 지쳤을 때 습관처럼 떠오르는 아마존

탐보파타에 며칠 머물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호애친과 마코의 울음소리를 구별하는 법, 닭 발처럼 생긴 붉은 뿌리를 드러낸 나무 이름은 몽키스 핑거이고, 정글을 헤매다 일행을 놓쳤을 경우 퉁, 치면 쇠스랑 소리가 나는 아이언 우드를 찾으면 된다는 사실. 어디선가 들리는 휘파람이 ‘스크리밍 피하’의 울음소리이며, 그 덕에 ‘여자 꼬시는 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것도.

이런 것들이 아마존을 또 여행할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먹고 사는 일엔 쓸 일 없는 지식이지만 방향을 바꾸는 데 지표가 되는 경험이 있다. 아마존이 내게 그걸 알려줬다. 휘몰아치는 업무로 마음까지 지치는 오후 세 시 무렵, 나는 습관처럼 지구 반대편에서 매일, 흰나비와 거북이가 뽀뽀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거북이는 몸을 말리러, 나비는 그저 거북이 침에 섞인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하는 생존 행위일 뿐이지만 그런 장면이 잔뜩 굳은 몸을 느슨하게 해주는 건 사실이다. 코앞의 괴로운 소사가 인생과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아마존은 도시인의 짐작보다 불편하고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알량한 모기 몇 마리를 제외하곤 대자연의 어느 생명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류진 여행작가는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 트래블러’,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일하며 42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유행의 흐름을 붙잡아 소개하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야생의 대자연으로 도망친다.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사는 삶을 글로 쓴다.

푸에르토말도나도=글·사진 류진 여행작가 flyryu@naver.com

여행 메모

아마존으로 향하는 직항은 없다. 탐보파타 국립자연보호지구에 들어가려면 미국의 애틀랜타,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쳐 페루의 수도 리마에 먼저 닿아야 한다. 델타항공, 아메리칸항공이 리마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을 운영하고 있다. 간 김에 아마존 말고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푸에르토말도나도로 향하는 길에 들르는 쿠스코에서 스톱오버 해볼 것. 세계 7대 불가사의, 여전히 비밀이 풀리지 않은 고대 도시 마추픽추의 거점 도시다. 동선을 고려했을 때 서쪽의 사막 지대 이카, 우주인의 손그림 ‘나스카 라인’ 탐험도 함께 계획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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