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아시아에 전해진 한자 불경, 그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입력 2018-11-29 18:26  

구마라집 평전

공빈 지음 / 허강 옮김 / 부키 / 704쪽│2만5000원



[ 서화동 기자 ]
“내가 번역한 모든 경전이 후세에까지 세상에 전해져 함께 널리 퍼지기를 바랄 뿐이오. 이제 많은 사람에게 성실하게 맹세하는바, 내가 번역하여 옮긴 것에 잘못이 없다면 화장한 후에도 내 혀만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오.”

서기 413년 4월13일 후진(後秦)의 수도 장안에 있는 초당사. 고좌(高座)에 앉아 경전을 강의하고 설법하던 고승은 이렇게 말했다. 혼미한 정신을 간신히 추스르고 말을 마친 그는 눈을 감았다. 다비식을 마치자 그의 유해는 공무(空無)가 됐으나 잿더미 속에서 온전히 형체를 갖추고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크고 연꽃 같은 홍색을 띤 혀였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믿기 힘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범어나 서역의 언어로 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 불경의 새 역사를 쓴 구마라집(鳩摩羅什·344~413)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혀가 탔느냐 안 탔느냐가 아니다. 그가 어떻게 불교를 공부했고 경전을 번역했느냐다. 《구마라집 평전》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화둥(華東)사범대 중국문학과 공빈 교수가 수행자이자 사상가, 역경가로 활동했던 그의 일대기를 복원한 책이다.

구마라집은 산스크리트어 쿠마라지바의 음역이다. 인도 출신 승려였던 아버지 구마라염과 서역 구자국(龜玆國·현재 신장의 쿠처) 왕의 여동생이던 어머니 지바의 이름을 섞어서 지었다. 7세에 어머니와 함께 출가한 그는 9세에 북인도의 계빈국(현 카슈미르)으로 유학을 가서 초기 경전을 배웠다. 귀국길에는 소륵국(현재의 카슈가르)에서 여러 논서와 초기 경전을 배웠고, 사차국의 왕자 수리야소마 밑에서 대승경전을 공부했다.

스무 살에 구자국의 왕궁에서 승려로서의 마지막 계를 받은 그는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수행자로서뿐만 아니라 불교사상에 대한 해박하고 깊이 있는 지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소승·대승불교의 모든 경전을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수사·논리학·수학·천문·음악·미술·의학·약학 등에도 능했다. 그러나 그 명성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382년 전진(前秦)의 왕이 된 부견은 여광 장군에게 구자국을 정벌하고 구마라집을 데려오게 했다. 구자국을 점령한 여광은 구마라집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고 왕녀와 결혼하도록 했다. 독신 수행자에게는 치명적인 파계였다.

깨진 그릇에는 물을 담을 수 없다고 했던가. 단 한 번의 파계는 구마라집의 명성과 그에 대한 존경심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구마라집은 장안으로 돌아가는 여광을 따라가야 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범본뿐만 아니라 서역어로 된 불경까지 빼놓지 않고 구해서 가져갔다. 활자본이 없는 무문본 불경은 매일 외워서 기억했다고 한다.

역경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귀국길에 여광은 전진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재의 간쑤(甘肅省)성에 있던 양주를 평정하고 후량을 건국했다. 이 때문에 구마라집도 이곳에서 무려 15년을 보내며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여광은 여기서도 구마라집에게 궁녀를 붙여 파계를 강요했다. 마침내 후진의 왕이 된 요흥이 그를 데려오게 해 국사(國師)로 모시고 장안의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에서 경전을 번역하게 했다. 굴욕의 17년 세월을 참고 견딘 결과였다.

장안에 머무는 12년 동안 구마라집이 번역한 불경은 대품반야경·법화경·금강경·유마경·아미타경·대지도론 등 35종 300권에 달했다. 구마라집이 이렇게 많은 경전을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식과 다양한 외국어 능력 덕분이었다.

그가 장안에서 역경 사업을 한다는 소식에 수많은 인재가 모여든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품반야경을 번역할 때는 이름난 승려 100여 명이 모였고, 법화경과 사익경 번역에는 문도 800여 명과 사방의 승려 2000여 명이 참여했다. 유마힐경 번역에는 1200명, 범망경과 십송률 번역에는 3000명의 승려가 모여 힘을 보탰다. 불세출의 구마라집과 뛰어난 제자들, 불교를 열렬히 신봉하는 황제가 만나 사상 최대의 역경사를 이뤄낸 것이다.

저자는 “후대의 현장법사는 구마라집보다 많은 불경을 번역했지만 구마라집은 현장보다 더 넓은 범위의 불경을 번역했다”며 “구마라집의 번역은 의미, 언어, 음악, 문학 색채 등이 이전 번역과 다르고 새로웠다”고 평가했다. 구마라집은 번역할 때 원뜻의 정확함과 표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렸다.

적잖은 두께의 책이지만 불교의 전래사와 역경의 역사, 당대의 문화와 사회, 자연풍경까지 함께 복원해낸 저자의 노고가 읽는 재미를 준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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