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은 운명공동체, 손 잡고 미래로 간다”

입력 2019-01-20 13:46   수정 2019-01-20 14:55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 회장 인터뷰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경제 침체 벗어날 전기 마련
다시 엔고시대 온다 하더라도 기업경쟁력 큰 타격 없어

중국 한국 추격 거세지만 기술력으로 충분히 성과낼 수 있어
재료산업, 공작기계, 로봇, 공장자동화에서 경쟁력 확보
기업과 정부는 운명공동체…서로 경청하고 도와야




“한국과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인력난이 심하긴 하지만 일본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부품·소재에 첨단기술 분야의 산업에 주력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 17일 오전. 도쿄도 지요다구 오오테마치의 게이단렌회관 23층에서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을 만났다. 표정은 온화하고 겸손했다. 인터뷰에 다소 신중한 화법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말투는 활달하면서도 단호했다. 달변으로 정치 경제 사회분야를 종횡무진했다. 그는 “일본 기업들은 정부·국민과 한 마음으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담=조일훈 부국장

▶한국에선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 새로운 경제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평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경제가 정말로 침체의 터널을 벗어난 것으로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경제는 1980~1990년대 초반까지 고도성장을 경험하며 순항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지면서 20년 가까이 성장을 못했습니다. 전례없는 침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경제계에선 일본 경제가 당면했던 난제를 풀어갈 정책모델을 만들고 사고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면서 오랫동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전환점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련됐습니다.

▶정부의 정책 전환이 그렇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십니까.

“아베 정권 이후 그동안 산적했던 과제들이 거의 다 해결됐습니다. 환율문제, 세금문제, 노동환경 문제 등이 속속 개선됐습니다. 기업경영과 경제환경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일본경제는 안정적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인위적인 엔저 정책의 덕을 많이 봤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엔저는 환율조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와 소비를 살려내기 위한 금리인하에 방점을 둔 것이었어요. 물론 엔저로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이 올라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엔저가 전부는 아닙니다. 최근 들어 엔화가 다시 오르고 있는데 일본 기업들의 실력이 없다면 다시 과거 고전하던 상태로 돌아가겠지요. 저는 엔고가 와도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디지털 변혁의 시대입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의 기술 진보가 경제와 기업 경영의 틀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일본은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한 몸이 되어 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

▶그동안 이뤄진 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본 산업계의 신진대사나 주력사업 교체는 오랫동안 부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한 변신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완전히 부활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계 전체가 과거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구구조의 변화도 이같은 변화를 재촉했다고 봅니다.”

▶한국은 중국 제조업의 가파른 추격에 위기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는 일본은 중국의 제조업 부상에 대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기업들에 대한 대응전략도 들려주십시오.

“중국은 전자업계를 중심으로 대량생산에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분야를 정부차원에서 육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량생산 측면에선 일본은 중국 뿐 아니라 한국, 대만에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승산이 적은 대량생산 분야에서 손을 떼고 첨단기술 분야의 다른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런 덕을 보는 것일까요. 현재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이 강해지는 것에 특별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잘하던 것을 이제 그들도 잘하게 된 것이라고 편하게 바라본다고 할까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한 대응방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산업마다 상황이 다른만큼 일률적으로는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히타치의 사례를 들자면 헬스케어 사업이 좋은 예가 될 것으로 봅니다. 중국은 한방의료 분야에서 강점을 보일지는 몰라도 병원경영은 잘 못합니다. 근대적인 병원 경영 부문에선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이런 부분이 히타치에겐 새로운 사업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기 보다는 잘하는 것, 강한 점을 찾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의 자신감 넘치는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 일본 경제가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악의 침체는 벗어났지만 아직 낙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해결해야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이노베이션(혁신)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쉽지않은 일입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모델도 바꿔야 합니다. 고도성장기에는 좋은 상품을 내놓기만 하면 됐습니다. 행운이었지요. 하지만 제조업에 편중된 이같은 공식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개발하는 산업구조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여건은 일본경제의 변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글로벌 경제가 공정한 규칙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환경이 돼야 비즈니스가 원활하게 진행됩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보여주고 있듯이 반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입니다. 경제 얘기를 하다보면 언제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세트로 묶여 나옵니다. 하지만 외부여건에 관계없이 할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1980년대 일본은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일본 경제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지요.

“경박단소로 대표되는 전자산업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철수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도 그렇습니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게 (일본기업이) 당하고 있으니까. 디스플레이와 TV 등도 마찬가집니다. 경박단소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려는 기업인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가장 주력하고 있고, 실제로도 수익이 올라가고 있는 분야는 재료 산업입니다. 일본 기업만이 만들 수 있는 고기능의 재료 분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반도체를 제조하는 장비라든지, 대체할 수 없는 다른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분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실제로 고도의 공장자동화 시스템이나 로봇, 공작기계 등에서는 장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이들 분야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케다약품공업의 아일랜드 제약사 샤이어 인수 등에서 보듯이 일본 기업들의 해외 인수합병(M&A)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M&A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이전까지는 자금 측면에서 여유가 없어서 큰 M&A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5~10년간 수익이 개선되면서 재정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기에 경제의 글로벌화 진전으로 기업들이 덩치를 키워야할 현실적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해외를 타깃으로 한 확장전략은 앞으로 멈추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 정부의 경제 정책 수립 과정을 보면 정부가 경제계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같은 신뢰관계를 구축했는지요.

“경제정책만 보자면 정부와 산업계간에 차이가 없습니다.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산업을 육성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글로벌 전개 과정에서 일본 기업이 설 자리를 잃으면 국가발전에도 해롭다는 사실을 정부와 경제계 모두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누가 누구 말을 잘 들어주느냐의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정부와 기업은 운명공동체입니다. 서로 경청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게이단렌 회장인 제가 올해도 계속 바쁘게 지내는 이유입니다. 하하하”

▶로봇이나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의 일본 기업들의 대응 전략, 준비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일본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소사이어티 5.0‘이라고 표현합니다. 제4차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변화는 제조업뿐만이 아닙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새로운 핀테크를 바탕으로 한 기존과는 전혀 다른 금융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아직 발전이 충분히 이뤄진 상태는 아니지만 여러 도전이 이미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소매, 물류 등이 일체화하면서 새로운 전개가 여러 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변화(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큰 흐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정부와의 협력이 잘 되고 있습니까.

‘소사이어티 5.0’은 디지털 기반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가 같이 만들어나가는 플랜입니다. 새로운 기업 전략, 국가 전략을 만들어나가자 하는 것이 ‘소사이어티 5.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최근 일본 기업의 임금 시스템 등에 대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의 직장 문화나 관행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떤 지향점을 지닌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고도성장기에 종신고용을 했습니다. 한 기업의 내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고용 시스템이었습니다. 임금도 연공서열에 따라 올랐습니다. 과거에는 효율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변화가 심한 시대에는 폐쇄적인 종신고용 시스템으로는 혁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의미에서 노동유연성을 늘려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임금체계를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산업마다 다소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뤄질 겁니다.”

▶일본 정부가 최근 적극적으로 외국인노동자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산업계는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산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일본 정부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소기업들도 일손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근 5년간 450만명 가량의 노동자가 줄었습니다. 잠재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데 애로사항입니다. 외국인들이 일본에 와서 일하고자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산업계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부와 발을 맞추고 있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확대정책입니다.”

나카시니 회장은 누구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게이단렌 회장(73)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휘청이던 히타치제작소의 ‘V자 실적회복’을 주도한 인물이다.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사상 최악인 7873억엔(약 8조795억원)의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한 회사를 사장 취임(2010년) 1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발빠른 자회사 재편과 사업구조 개혁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게 지론을 갖고 있다.

2014년 히타치 회장에 오른데 이어 지난해 5월엔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전 회장의 뒤를 이어 게이단렌을 이끌고 있다.

1970년 도쿄대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히타치제작소에 입사했다. 히타치내에서 ‘주류’가 주로 근무한다는 이바라키현 히타치공장이 아닌 오미카공장에서 ‘비주류’로 경력을 쌓으며 ‘야성’을 키웠다는 평이다. 히타치 유럽법인과 북미법인 대표 등을 지내며 해외경영 감각을 쌓았으며 제프 이멜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회장, 지니 로메티 IBM 회장 등과 친분이 깊다.

정리=김동욱 도쿄 특파원/임락근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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