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예술단 통합 등 '변화의 바람' 주도…최고 극장 만들 것"

입력 2019-02-08 17:14  

"회계법인·IT업체 거쳐 예술경영계로…'잘할 것 같다' 생각들면 도전 택했죠"

호기심은 공학도 아버지 영향
학창시절부터 숫자 좋아해 별명이 '회전곰'
"졸업 후 자연스럽게 회계사 길 걷게 됐죠"

변화 무쌍했던 '이색 경력'…기업회계용 SW하청업체 부도나자 인수
그후 빚 갚으려 운동기구회사 입사…다시 회계법인 차려 업계 15위까지 올려

예술과 만남이 인생 전환점…나와 다른 예술가들 세계에 관심 가져
경영자문 맡으며 입소문…연구회 결성
"세법에 들어간 '문화접대' 용어도 만들었죠"

매일 변화하는 세종문화회관, '고객지원팀'을 '고객 창출팀'으로
수동적인 조직에 잠재 역량 발휘 주문…"브랜드·역량 탄탄하게 만들 것"



[ 김희경 기자 ]
공인회계사, 소프트웨어업체 사장, 운동기구회사 관리부장, 회계법인 대표,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모두 한 사람 얘기다. 같은 인물의 이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넉 달여 전부터는 또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표 공연장 중 하나인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 수장직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말 서울 삼청동 한식당 소선재(素饍齋)에서 새 일에 흠뻑 빠져 있는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56)을 만났다. 김 사장은 “세종문화회관 경영이 쉽진 않지만 정말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이어 “내가 다른 회계사에 비해 사연이 좀 많긴 하다”며 변화무쌍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놨다.

“호기심 생기면 과감하게 도전”

김 사장이 즐겨 찾는 소선재는 아담하고 고즈넉한 한옥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삼청동 특유의 분위기가 더 묻어난다. 그는 귀한 손님들과 만날 때 주로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대화가 시작될 무렵, 먹음직스럽게 다져진 도톰한 떡갈비가 나왔다. 여기에 장아찌와 강경산 새우젓을 곁들인 보쌈, 매실 간장에 달콤하게 재운 능이불고기, 매콤한 낙지볶음, 얇게 저민 고소한 육전까지 한 상이 가득 차려졌다. ‘소선재 막걸리’도 따라 올라왔다. 달달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으로, 이곳 대표 음식들과 잘 어울렸다. 건강을 위해 2008년부터 술을 안 마신다는 김 사장도 첫 잔만큼은 함께 시원하게 들이켰다.

김 사장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그의 부모는 황해도 출신이다. 김 사장도 넓은 의미에선 실향민인 셈. “아버지는 월남한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공대를 나오셨습니다. 저와 형제들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처럼 수학을 좋아했지요.”

숫자와 관련한 두뇌 회전이 빠르다는 의미로 김 사장의 학창시절 별명은 ‘회전곰’이었다. 외모는 듬직한 곰인데 두뇌는 비상하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인생 행보는 매번 예상을 벗어났다. 김 사장은 “구체적으로 꿈을 정해놓고 미래를 계획한 적은 없었다”며 “호기심이 생기고 ‘잘할 것 같다’ 싶으면 과감하게 변화를 선택하고 도전하는 식이었다”고 했다.

1987년 공군장교 시절, 국방회계를 담당하며 남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접한 게 시작이었다. 제대 후 회계사가 되고 합동회계사무소(개인 회계사무소가 연합한 형태의 사무소)에서 일을 하면서 또다시 운명처럼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반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기업들이 회계관리를 컴퓨터로 하게 됐어요. 사무소에선 기업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납품하기 위해 소프트웨어회사에 하청을 줬죠. 저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회사 직원들에게 회계 교육을 하게 됐습니다.”

납기가 두어 달 남은 시점, 소프트웨어회사가 돌연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동안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월급을 줄 테니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해 달라”며 1993년 소프트웨어회사를 직접 차렸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급변하는 컴퓨터 시장 환경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김 사장은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선배가 운영하던 운동기구회사 관리부장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그는 변신을 거듭했다. 회계사무소, 창업투자회사로 갔다가 2003년 지인과 함께 한미회계법인을 설립했다. 세종문화회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까지 그는 이곳 대표로 일했다. 한미회계법인은 15년 만에 업계 15위권으로 올라섰다. 매출은 132억원 규모. “지금 생각해 보면 살 떨리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변화와 도전의 경험이 또 다른 변신을 할 때마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예술계와의 뿌리 깊은 인연

예술과 접점이 적었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서울예술단의 연봉제 전환 자문을 맡은 일이었다. 처음엔 생소하게만 느껴졌고, 일부 관계자와 개인적 만남을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다 문화컨설팅업체인 메타기획컨설팅을 설립한 고(故) 강준혁 문화기획자를 만나면서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답게 이상적인 얘기를 주로 하길래 저는 ‘조직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는 식으로 대응했어요.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엄청난 아우라가 느껴졌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때문에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술계 활동 이야기를 하기 전, 김 사장은 잠시 육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많은 음식 중에도 특히 육전을 잘 먹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냄새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했어요. 어머니가 부쳐주신 육전만 유일하게 잘 먹었습니다. 이후 대학에 가고 술을 마시게 되니까 신기하게 고기도 잘 먹게 되더라고요.”

김 사장은 회계법인 대표로 일하면서도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심의위원으로 꾸준히 활동했다. 예술단체경영연구회인 D.A.M.(Do Arts Management)을 설립해 예술인들이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도왔다. 모임 이름은 ‘이론으로만 하는 예술경영’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기는 예술경영’을 하자는 의미로 지었다. 2주에 한 번 모여 세금, 회계, 예술경영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벌써 19년째다. 그동안 그가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불과 세 번이었다. “예술인에게 경영 컨설팅을 해주다 보니 소문이 나서 질문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났어요. 일일이 시간을 내기 어려워 한번에 다 모아 Q&A를 하면 좋겠다 싶어 시작했죠. 처음엔 모임 이름도 없었는데 어느덧 100여 명이 거쳐갔습니다.” 문화예술계는 경영계와의 소통을 필요로 했고, 거기에 자신의 소임이 있다고 김 사장은 확신했다.

그는 예술계 변화를 위해 제도 개선에도 힘썼다. 2007년 세법에 들어간 ‘문화접대’라는 용어도 김 사장이 창안했다. 기업이 고객사를 상대로 접대할 때 식사나 골프 라운딩 대신 공연, 전시 티켓을 주면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다. “정치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잖아요. 예술 기부도 늘어나게 하려면 돈을 내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합니다. 기업 접대비가 연간 12조원 정도인데 이 중 1%인 1200억원, 아니 0.5%인 600억원만 예술계로 흘러들어와도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목표와 달리 아직 문화접대가 활성화되지 못한 데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은 고객사 대상 B2B 사업을 주로 하니까 접대할 일이 잦아요. 그런데 아직 이 제도를 잘 모르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브랜드 역량 키울 것”

그가 대표를 맡으면서 세종문화회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객지원팀의 팀명을 바꾸려는 게 대표적이다. “‘고객 만족’ ‘고객 감동’ 등을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나아간 개념이 ‘고객 창출’이더라고요.” 그들의 잠재 역량을 활용할 방안도 떠올랐다. “산하 예술단들의 공연별 티켓 판매량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이 팀이 다 갖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활용하지 못한 이 데이터를 각 예술단에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해 새롭게 고객을 창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은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오페라단 등 9개에 달한다. 김 사장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유사 단체를 통합하기로 했다.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청소년국악단이 해당된다.

예술단장들이 더 책임감 있게 일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장 임기는 통상 2~3년. “그동안은 예술단장 임기 막바지에 연장 여부를 알려줬어요. 저는 최소 1년 전엔 통보해줘야 사장을 믿고 다음해 계획을 세우고, 책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사와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내며 된장찌개가 나왔다.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는 구수하면서도 칼칼했다. 명이나물, 시금치무침 등 반찬도 정갈하게 나와 입맛을 돋웠다. 그는 된장찌개와 밥을 싹싹 비운 뒤 포부를 밝혔다.

“세종문화회관이 지닌 역량과 브랜드 가치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 같아요. 언젠가 대한민국 모든 공연장을 통틀어 최고 극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약력

△1963년 서울 출생
△1982년 경기고 졸업
△1986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공인회계사
△1999년 예술단체경영연구회 D.A.M. 대표
△2003년 한미회계법인 대표
△2005년 메세나인상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2006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및 전임 컨설턴트
△2007년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 대학원 겸임교수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심의위원
△2012년~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기부금 세제 혜택 연구
△2018년 산업정책연구원 ‘대한민국 CEO명예의전당’ 수상
△2018년 9월~ 세종문화회관 사장


■김성규 사장의 단골집 소선재

외국인도 반한 도톰한 떡갈비…'소선재 막걸리'도 일품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정문 맞은편에 있는 소선재는 떡갈비 불고기 등을 각종 반찬과 함께 올리는 한식집이다. 2002년 생긴 이곳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다. 2~3년 전만 해도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최근 삼청동을 들르는 외국인이 줄면서 비중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하루평균 10명가량이 이곳을 찾는다.

대표 메뉴는 떡갈비정식, 능이불고기정식, 보쌈정식, 보리굴비정식, 간장게장정식, 낙지볶음정식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가성비’ 높게 서비스한다. 단품으로 육전, 김치해물전, 한우도가니전골도 판매한다.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직접 담근 된장과 효소로 맛을 내기 때문에 모든 음식에서 깔끔함이 느껴진다. 가게 이름을 딴 ‘소선재 막걸리’도 별미다. 포천 양조장에서 공급받는다. 다른 가게에선 맛볼 수 없는 이곳만의 막걸리라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정식 가격은 1만2000원부터 3만5000원까지 다양하다. 단품은 1만8000~2만5000원 정도다. 소선재 막걸리는 소(小) 7000원, 대(大) 1만1000원. 1년 36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쉬는 시간은 오후 3시~5시20분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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