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일본의 최장기 호황…'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입력 2019-02-21 10:22   수정 2019-02-21 13:28


일본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기에 들어섰다는 일본 정부의 잠정 결론이 나온 지 한 달 가까이 되지만 아직 장기 경기확대기를 지칭하는 ‘이름’이 정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2차 대전 이후 최장기간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8%에 달하는 등 호황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감대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습니다. 자칫 이름 없이 스쳐버린 1990년대의 약한 경기회복기 사례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지난달 29일 열린 1월 월례경제 보고에서 74개월 연속으로 경기가 ‘회복중’이라고 판단한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현재의 경기확대기를 지칭하는 합의된 명칭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장기 호황기를 두고 ‘진무(神武)경기’ ‘이자나기 경기’ ‘버블 경기’ 등의 이름이 붙었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라는 설명입니다. 유명 애니메이션 제목에 빗대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은 무엇이냐는 질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장기호황에 대해 명칭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4년 12월부터 1957년 6월까지 31개월간 진행된 ‘진무(神武)경기’때부터라고 합니다. 경제기획청(현 내각부) 백서에서 ‘진무시대 이후의 경기’ ‘진무 경기’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언론도 널리 사용했다고 합니다. 일본 고대 ‘진무 일왕’이후 가장 경기가 번성했다는 의미로 한국식으로 치면 ‘단군 이래 최고의 경기호황’ 정도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보급이 확산됐던 흑백TV, 세탁기, 냉장고 등 3개 품목을 두고 일본 고대신화에서 일왕이 신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삼종신기(三種の神器·칼, 거울, 곡옥)’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이후 고도 성장기에 ‘이와토(岩?)경기’ ‘이자나기(いざなぎ)경기’ 등의 용어가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1965년 11월부터 1970년 7월까지 이어졌던 ‘이자나기 경기’는 일본 장기호황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연평균 성장률 11.5%로 일본이 경제대국이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것도 이 시기입니다. ‘이자나기’라는 명칭은 ‘고사기’에 나오는 일본신화 속 남신의 이름인 이자나기(伊? 諾尊)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 51개월간 지속된 ‘버블경기’에 대해선 당대에는 ‘여성의 시대’를 맞이했기에 고대 일본사에 등장하는 여왕인 ‘히미코’의 이름을 따 ‘히미코 경기’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있었지만(당시 관련 부처 장관이 자신의 이름을 은근슬쩍 덧붙이려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사후적으로 ‘버블 경기’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거품경제가 붕괴된 이후 저성장 기간과 1980년대의 고성장이 너무나 대비되기에 ‘버블 경기’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일본인들이 느꼈던 것입니다.


거품 붕괴 이후에는 일본에서 경기회복기에 이름을 붙이는 관행에 대한 열의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1993년 11월~1997년 5월의 소폭 경기회복기는 아예 이름이 붙지를 않았습니다. 모두 ‘잃어버린 20년’으로 인식하던 시기였기에 미세한 지표상 경기회복이 경제 흐름의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본 것입니다.

2002년 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73개월간 지속돼 기존 2차 대전 이후 최장기 경기회복기를 기록한 ‘이자나미 경기’는 남신 이자나기의 아내 이름에서 따왔지만 이 시기 역시 호황이라는 인상은 그리 강렬하지 않아 널리 쓰이는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현재의 경기확대에 대해선 일본 사회에서 통일된 용어는 없는 상황입니다. 2012년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이후 경기회복이 본격화됐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일본 총리의 이름을 딴 ‘아베노믹스 경기(アベノミクス景?)’로 부르자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아베노믹스의 성과를 너무 강조하는 것이라며 마땅찮아 하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아베 총리 뿐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구로도 하루히코 총재의 이름을 같이 따서 ‘아베구로믹스 경기(アベクロミクス景?)’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아베 총리의 정책을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선 이번 경기확대기 연평균 성장률이 1.2%에 불과해 11.5%에 달했던 ‘이자나기 경기’는 물론 ‘버블 경기(5.3%)’, ‘이자나미 경기(1.6%)’에 모두 못 미치는 만큼 ‘미지근한 경기’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최근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일본 경제 전망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습니다. 아베노믹스가 일본인들의 경제 자신감을 북돋고, 이후 실제로 일본 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확실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걱정도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초장기 경기확대기도 조만간 끝을 맺지 않겠냐는 예상도 늘고 있는데요. 과연 후대 역사가들은 최근의 일본 경기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일지 궁금해집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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