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초상화 哀想

입력 2019-03-21 18:16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초상화 문화
고품격 미술문화로 다시 부활했으면

이원희 < 서양화가 >



초상화 작업을 한 지 30여 년이 지났다. 젊은 시절 조금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겠다 싶어 시작했고, 우연한 기회에 국회의장 초상화를 의뢰받아 제작한 것이 연결돼 대통령,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까지 모두 열두 분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초상화가로 인정받게 됐다.

초상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서양화단은 물론 미술시장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주문 제작을 하는 데다 영정(影幀) 대체수단이라는 의식이 강한 탓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클래식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초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 후기 문인 서직수의 초상(보물 제1487호)을 보고 받은 감동과 충격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최고 대가들이었던 김홍도와 이명기가 합작해 그린 이 수묵 초상화의 뛰어난 사실성 및 정신성 표현은 서양화를 공부하던 필자에게 당시 한국의 유화 작품은 왜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고, 인물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한 계기가 됐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초상화 문화는 왜 제대로 전승되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은 그 후로 이어졌는데 30여 년간 유럽과 러시아를 다니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렸고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조선시대에는 ‘터럭 하나까지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관념 아래 심지어는 곰보자국이나 검버섯 같은 흠결까지 치밀하게 그렸다. 왕의 어진은 물론 과거 급제자 연명부를 초상화로 남긴다든지, 이들이 당상관이 되거나 기로소에 들어갈 때면 어명으로 도화서에서 초상화를 그리도록 해 사대부 가문에는 뛰어난 초상화가 많이 전해진다. 어진은 안타깝게도 6·25전쟁 때 부산 피란지 창고에서 화재로 거의 모두 타버렸고, 전주 경기전에 보관된 태조 초상만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초상화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의 격랑을 거치면서 거의 사라져버린 듯하다. 사진 때문에 초상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거나, 영정사진을 대신할 수단으로 생각해서 조금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거나, 아니면 한 번 그려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다.

초상화는 가문이나 기업 또는 기관의 역사를 가장 품위 있고 가치 있게 기록하고 보존하는 수단이자 귀족문화의 큰 유산이다. 사진과 영상물에 기록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물려주긴 했지만 영국,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국립초상화미술관을 둘 정도로 중요한 미술문화로 여기고 있다.

초상화는 클래식 문화의 가장 중요한, 어쩌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야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보라. 회화·조각 작품의 대부분이 인간을 그린 것이고 또 그 형식을 빌린 초상화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 미국 초상화협회에서는 매년 초상화 공모전을 열고 있다.

중국 작가 중에는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 영국 왕실 초청으로 버킹엄궁에 들어가 여왕과 그의 부군 초상화를 제작한 이도 있다. 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으로는 한국 젊은이들이 제대로 훈련만 받는다면 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각광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 환경과 여건이 갖춰져 어느 날 매스컴에 백악관이나 버킹엄궁에서 우리 젊은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사진이 크게 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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