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전도연 "외면하고 싶던 세월호…영화 '생일' 고사했었던 이유"

입력 2019-03-27 08:45  

영화 '생일' 순남 역 배우 전도연





"왜 굳이 이 작품을 해야하냐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죠."

배우 전도연은 솔직한 배우다. 세월호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 영화를 내놓으면서도 "이 작품을 통해 달라진 건 없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생각나는대로 쉽게 뱉는 스타일은 아니다. 위선적이지만 좋은 말, 의미없는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영화 '생일'이 주는 메시지를 묻자 "우린 그런 게 없다"고 하면서도 세월호가 갖는 무게감, 아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전하려 1시간 여의 인터뷰 동안 조심스럽고 진중하게 말을 내뱉었다.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수호(윤찬영 분)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가족들이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수호의 생일을 맞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전도연은 수호의 엄마 순남 역을 맡았다. 순남은 수호를 보낸 아픔을 삭히며 남은 딸 예솔(김보민 분)을 위해 마트 캐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캐릭터다.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간 남편을 대신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아들 수호을 잃은 후 냉소적이고 예민하게 바뀌었지만, 수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며 변화를 겪는 순남을 전도연은 세밀하게 그려내며 극을 이끌었다.

▲ 시사회 후 반응이 나쁘지 않다.

시사를 하고 나오니 조금 홀가분하다. 영화를 오픈하고 나서 반응은 골라서 좋은 것만 듣고 있다. 영화를 선택도, 촬영을 할 때도, 영화 개봉을 할 때도 쉽지 않았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어렵다. 이렇게 어려웠던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지칠까봐, 좋은 얘기를 들으면 힘나니까, 좋은 얘기만 골라 듣고 있다.

▲ 가장 좋았던 얘기는 무엇이었나.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세월호'라는 소재 때문에 다가오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너무 힘들거 같다는 그런 짐작들 있지 않나. '보고 나니 다 같이 봐야 할 영화고, 누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전환하고 싶다. 그러고자 이렇게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다.

▲ 처음엔 거절했다가 출연을 결정하게 된 작품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한 요소가 무엇이었을까.

망설인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세월호라는 소재의 부담, '밀양'의 신애도 생각이 났고. 순남을 연기하면서 '밀양'의 순애를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고사를 했다. 감독님과는 '밀양'때부터 함께 했다. '밀양' 스크립터였다. '밀양' 연출자인 이창동 감독님, 제작사 대표님이 제가 읽은 시나리오를 궁금해하셔서 이야기를 나눴다. 표면적으론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내가 이 작품을 놓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하겠다고 결정한 건, 앞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였다. 정치적으로 무언가 의혹을 제기하거나 그런 작품이었다면 아무리 시나리오가 좋았어도 출연하지 못했을 것 같다.

▲ '밀양'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잃은 엄마 설정이라서 부담이 됐나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 '밀양'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잇을까 싶었다. 촬영을 할 땐, 상황 설정은 같지만 이야기가 달라서 순남 그 자체에 집중했다. 하기 전엔 걱정이 됐는데, 막상 하고나서는, 신애를 생각하지 않았다.

▲ '밀양'도 그렇지만, 순남이란 캐릭터 자체가 쉽지 않은 인물이다.

주변에 모니터를 해달라고 했을 때에도 다들 오열하면서 전화가 왔다. 저 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세월호 참사)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슬픔이지 않나. 저도 딸이 있다보니, 엄마의 마음으로 아파하게 됐다. 너무 아플거 같아서 하지 말라는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엔 감정적으로 앞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 전도연이 기억하는 세월호는 어떤가.

그때 기억은,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 알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배가 가라앉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은 외면하고 피하는 스타일이다. 모른척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생일'이란 시나리오 받았을 때 미안함도 컸다.

▲ '생일'이란 작품을 하고 심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나.

사실 없다. 제가 연기를 하긴 했지만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싶다. 아직 이 이야기가 진행형이고, 제가 어떤 생각을 하건 의견도 분분하다. 다만 지금 내가 살아있고, 가족이 있고, 이런 것에 대한 감사함은 느낀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거 같다. '책임감, 의무감이 생기지 않았냐'고 하는데 생길수가 없다. 유가족 시사회 무대인사를 갔는데, 극장 안에 못들어가겠더라. 한발 딛기까지 너무 힘들더라. 눈을 못마주치겠더라. 그분들에게 '제가 잘했나요? 어땠나요?' 감히 말하기 그러더라. 그냥 너무 죄송했다.

▲ 그럼에도 전도연이란 이름이 주는 기대감이 있다.

기대감은 항상 좋다. 제가 감당하지 못할정도로 그렇게 받고 싶은게 기대같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부분에서 부담스러웠다. 제가 진지해서일 수 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해서일수도 있는데, 이 작품을 했을 때 세월호라는 무게감에 전도연의 무게감을 더하는게 아닐까 걱정도 됐다.

▲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흔히들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은 오히려 마음의 준비가 됐다. 그냥 보기에도 '힘들게 찍었겠구나' 싶지 않나.(웃음) 그런데 저를 가장 아프게한 건 예솔이었다. 수호의 아픔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게 예솔이었다. 그런 예솔이가 있어서 순남이가 그래도 계속 살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들을 떠나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예솔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미안해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견디는게 그들의 일상이었겠구나, 그렇게 하루를 또 견뎌냈겠구나 하는 마음이 많이 남는다.

▲ 실제로 딸을 키우는 엄마다.

그래서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 처음엔 낯설었다. 수호의 친구로 나오는 배우는 '협녀'에서 제 의붓아들이었고, '굿와이프'에서도 아들로 나왔다. '협녀'를 찍을 때 제가 귀여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꼬마가 커서 이렇게 성장했다는 게 신기했다. 분량이나 이런거 상관없이. 좋은 작품 참여에 의의를 두고 성장하고 커나가는 거 같더라.

▲ 딸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던가.

이번에 같이 보러가려 한다. '내 마음의 풍금' 이후 정말 오랜만에 전체관람가 영화다. 이전까지 제 영화를 같이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TV에서 나오는 걸 보는 정도였다. 그래도 엄마가 우리나라에서 연기를 잘한다는 배우로 꼽힌다는 걸 보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사실 제가 그렇게 주입하고 강요하고 있다.(웃음)

▲ 보다 많은 작품에서, 많이 보고싶다는 반응도 있다.

나이가 애매한가 이런 생각도 했다. 50살이 되면 차라리 나아질려나 이런 생각도 했다. 익숙해지는 게 싫어서 다른 걸 쳐내면 제가 할 수 있는게 너무 없더라. 그래서 오랜 공백이 생기고. '생일'도 '남과여' 이후 4년 만이다. 힘든 것만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가학적으로 고통을 즐기거나 그런 건 아니다. 연기하는게 좋고 현장이 좋지만 감정적인 고통의 힘듦을 즐기진 않는다. 그래도 힘들어도 '잘한다'고 생각하니 저에게 시나리오 주시는게 아닌가 싶다. 많이 하고 싶다. 끊임없이 찾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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