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파우스트’도 채팅형 소설이 될 수 있다”

입력 2019-04-05 13:58   수정 2019-04-05 14:06

[인터뷰] 최재현 아이네블루메 대표
"1020은 글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기존 형태를 거부하는 것"
"다양한 콘텐츠를 채팅형으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목표"



엉덩이 가벼운 아이들이 수십 권의 ‘삼국지’를 읽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비?조조?손권이 천하를 다투는 무협 특유의 재미도 있겠지만, 그보단 흡입력 높은 ‘만화’라는 형태로 콘텐츠가 각색됐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로 된 삼국지는 ‘제대로 된 삼국지’가 아니란 비난도 있지만, 많은 아이들은 그렇게 책을 보았다.



“‘꼰대’들은 소위 ‘요즘 것들’인 1020 세대가 긴 글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해요. 안 읽는 게 아니라 기존 형태로 나오는 콘텐츠를 거부하는 겁니다.”

최근 서울 홍대 부근 사무실에서 만난 최재현 아이네블루메 대표는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 읽을거리를 줘야 한다”며 “책을 꽤 읽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고전 ‘파우스트’도 채팅형 소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네블루메는 모바일 채팅형 소설 플랫폼 ‘채티(Chatie)’를 선보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이들이 서비스하는 채팅형 소설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채팅처럼 등장인물들이 채팅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야기를 종이책 대신 웹상에서 쓰고 전달하는 웹소설보다 더 ‘진화’한 형식이다. 텍스트뿐만 아니라 비디오, 사운드, 이미지까지 지원한다. 텍스트는 짧고, 묘사는 이미지로 대체한다. 살인하는 장면에 피가 튀는 효과가 들어가는 식이다.



최 대표가 채티를 기획한 계기는 두 해 전인 2017년 미국의 유사 서비스 ‘훅드(Hooked)’를 우연히 접했을 때다. 그는 웹소설 시장이 커지고 있는 데다 카카오톡 등 다양한 메신저의 사용에 익숙한 한국에도 채팅형 소설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 대표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지난해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채티는 1년도 안 돼 65만 명 이상이 앱(응용프로그램) 다운로드를 하고 15만 편의 작품이 쌓였다. 월 이용자수(MAU)는 15만명에다 매일 이용자들이 1000편 이상의 작품을 올릴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창작 도구도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 채티는 PC와 모바일에서 누구나 쉽게 채팅형 소설을 창작할 수 있는 편집툴도 서비스하고 있다. 창작된 소설은 편집툴 기술에 기반해 채팅 방식으로 구독자에게 표출된다.

최 대표는 “유사 서비스를 하는 일본의 ‘텔러’도 하루에 300편 정도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아이네블루메는 채티의 빠른 성장 속도와 채팅형 콘텐츠의 시장성을 인정받아 지난 2월 25억원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다. 시드 투자까지 합치면 누적투자금은 31억원이다.

아이네블루메는 ‘이것도 소설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소설치고 너무 가볍지 않으냐는 비판이다. 그는 “처음에 웹소설이 나왔을 때도 다들 저건 소설이 아니라고 했다”며 “무겁고 진지한 것이 옳고 가볍고 경박한 것은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뮤지컬도 오페라가 지겨워서 파생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장성에서도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채티의 주 이용자층은 80% 이상으로 1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최 대표는 “유튜브도 처음엔 10대만 쓰던 서비스지만 지금은 5060 세대의 소비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며 “채티 역시 전국민이 쓰는 서비스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아이네블루메는 지난달부터 ‘기다리면 무료’ 방식을 활용한 부분 유료화 모델로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 기다리면 무료는 작품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다음 회차를 공짜로 볼 수 있지만, 바로 보려면 일정 금액의 이용권을 사야 하는 방식이다. 차후 웹툰, 오디오북 등으로 자체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한 2차 저작물 시장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최 대표는 15년 동안 네이버에서 부문장, 기획본부장, 미국법인장 등을 역임하며 네이버가 플랫폼으로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는 “채티에 소설만이 아닌 축하카드부터 시작해 뉴스까지 온갖 콘텐츠를 담아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플랫폼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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