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채 갭투자자 줄파산…세입자 '날벼락'

입력 2019-04-10 17:44   수정 2019-04-11 11:46

동탄·천안 등 세입자 피해 속출

집값 하락에 '깡통전세' 신세
전세보증금 줄줄이 못 돌려줘
고의경매로 세입자에 집 강매
형사고소 당한 임대사업자도



[ 전형진/안혜원/민경진 기자 ]
전·월세를 끼고 아파트를 수십, 수백 가구씩 사들인 ‘갭투자자’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있다. 작년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역전세난 여파로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게 원인이다.

10일 수원지방검찰청에 따르면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충남 천안 등에 주택 270여 가구를 보유했던 임모씨가 지난 8일 세입자들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 사기 강제집행면탈죄 등의 혐의다. 그를 고소한 세입자들은 “역전세난에 처한 임씨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가족과 허위 채무를 만들어 집을 고의로 경매에 부쳤다”며 “경매로 집이 남에게 넘어가면 세입자들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을 악용해 임씨가 세입자들에게 집을 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임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보유 주택의 절반 이상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청주에선 공동투자에 나섰던 갭투자자 6명 소유의 아파트 121가구가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은 2017년 전·월세와 대출을 끼고 신라아파트와 한울아파트를 대거 사들였다. 갭투자자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하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이 경매에 부쳤다.

경남 창원에선 아파트 192가구를 보유한 한 임대사업자가 작년 여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는 전세를 끼고 가구당 2000만~3000만원을 들여 소형 아파트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창원 주택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매매가격이 2년 전 전셋값 아래로 내려가는 ‘깡통전세’ 상태가 되자 손을 들었다.

집을 31가구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가 4629명(2017년 기준)에 달해 이 같은 파산 사례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정충진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역전세난 대처 방안을 묻는 갭투자자의 상담과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장춘몽'으로 끝난 갭투자…전셋값 동시다발 하락에 '백기'

2010년부터 작년까지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광주→수도권 순으로 이어진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국에 ‘갭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갭투자란 전세보증금을 끼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투자 방법이다. 자기자본 투입이 적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전셋값과 집값이 순차적으로 하강 국면에 접어들자 탈이 났다. 전세 보증금을 내줄 돈을 넉넉히 준비해 놓지 않은 터라 역전세와 깡통전세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국지적인 공급 과잉까지 겹친 전국 곳곳에서 갭투자 ‘큰손’들이 하나둘 백기를 들고 있다.

200가구 굴리다 파산

10일 경남 창원 성산구 대방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대방그린빌’ 41가구를 소유한 임대사업자 김모씨에 대한 법원의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다. 김씨는 창원과 김해 일대에 아파트 192가구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여름 현금 흐름이 막히면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자 경매를 막기 위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2000년대 초반 임대사업을 시작한 김씨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전세를 안고 집을 사들여 보유 숫자를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창원 집값과 전셋값이 2015년 말부터 급락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애초 현금을 거의 쥐고 있지 않았던 데다 집이 팔리지도 않자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다. 김씨가 파산하면서 세입자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김씨의 아파트 가운데 진행 예정이던 74가구의 경매가 모두 중지됐다.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했지만 아직 인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당이라도 받아 이사를 나가야 하는 세입자는 봉변을 당한 셈이다.

공동투자 끝에 ‘단체경매’

한꺼번에 공동투자에 나섰다가 단체로 경매에 넘어가는 일도 생겼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104가구가 일시에 경매로 나왔다. 김모씨 등 투자자 6명이 2년 전 10~20가구씩 나눠 전세와 대출을 끼고 매집한 아파트다. 이들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하자 금융회사가 경매에 부쳤다. 532가구 규모의 소형 아파트 가운데 5분의 1이 이렇게 경매에 나왔다. 대부분은 유찰을 거듭하면서 감정가 대비 반값 경매가 이뤄지고 있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상황도 제대로 모르고 들어온 이들이 ‘제발 세입자 좀 맞춰달라’고 통사정을 했다”며 “결국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세입자에게 집 떠넘기기도

궁지에 몰린 갭투자자가 ‘출구전략’으로 경매를 악용하면서 세입자를 두 번 울리는 사례도 있다. 동탄신도시와 천안 등지에서 자신과 아내 명의로 아파트와 빌라 270여 가구를 사들인 임모씨는 고의 경매를 활용해 손실이 난 부동산을 대거 처분했다. 전세를 안고 투자한 부동산 매매가격이 떨어지자 아버지와 어머니, 처형 등 친인척과 가짜 채무 관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후순위 근저당을 설정해 짬짜미 경매를 했다. 세입자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낙찰받거나 임씨로부터 매수했다.

임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아파트 20가구를 세입자에게 떠넘겼다. 임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보증금을 날릴 수 있으니 차라리 내게서 사가라”며 세입자에게 겁을 줘 집을 팔아치웠다. 19가구는 제3자가 낙찰받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앞으로 사실상 세입자가 떠안게 될 경매 물건도 29건 남았다. 세입자들은 집주인 임씨를 사기와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무리한 투자가 화근

줄도산이 이어지는 건 갭투자자들이 현금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퇴거할 때 돌려줄 보증금만큼의 여윳돈을 늘 준비해둬야 하지만 대부분 갭투자자는 2000만~3000만원만 생겨도 집을 추가로 더 샀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탈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계에 봉착한 갭투자자가 숱하다고 일선 중개업소는 전했다. 청주 율량동 A공인 관계자는 “수십 가구를 임대하다가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위험한 상황에 몰린 갭투자자가 많다”며 “집을 팔아봤자 세입자 보증금도 못 빼주기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고양과 광명, 수원 등 갭투자자가 몰렸던 수도권 지역도 비상이다. 수원 영통구 등에 10가구 이상 갭투자를 한 B씨는 “역전세를 한꺼번에 맞는 바람에 4억원을 대출받아 막았다”며 “세입자에게 역월세로 매월 200만원씩 돌려주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투기과열지구 자금조달계획서 분석 현황에 따르면 2017년 10월~2018년 9월 1년 동안 서울 주택 거래에서 전세보증금을 승계한 갭투자 비율은 51%에 달했다.

■갭투자

아파트 매매 가격과 전세 보증금의 차액(差額·gap)이 적은 아파트를 골라 소액의 투자금만으로 사들이는 기법이다. 전셋값이 추가 상승하면서 매매가격을 밀어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 투자 대상이다. 기대대로 매매·전세 가격이 오르면 투자금 대비 큰 수익을 올리지만 반대의 경우엔 큰 손실을 본다.

전형진/안혜원/민경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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