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길·하늘재길·장성새재길…옛길에서 만나는 봄 향기

입력 2019-04-14 15:06  

여행의 향기


[ 이선우 기자 ]
완연한 봄기운을 즐기기에 걷기여행만 한 것이 있을까. 미세먼지로 선뜻 여행계획을 잡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 봄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올봄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고 지금도 길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옛길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생동감 넘치는 수려한 봄 풍경은 물론 우리 선조들의 애달픈 삶의 여정과 애환도 만나볼 수 있다.

옛길에서 만나는 역사 ‘문경새재길’

[코스] 옛길박물관~문경새재도립공원 제1관문~제2관문~제3관문~조령산자연휴양림~고사리마을

경북 문경은 우리나라 문화지리의 보고이자 길 박물관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문경을 대표하는 옛길인 문경새재(명승 제32호)는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백두대간 조령산 고개로 이어진다. 새재는 예부터 영남과 서울을 잇는 관문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새재 넘어 소조령길01코스 문경새재길’의 시작은 문경 옛길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볼 수 있는 옛길박물관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은 주흘관(1관문)~조곡관(2관문)~조령관(3관문)으로 이어진다. 1관문에서 2관문까지 거리는 3㎞. 길손들이 머물며 각자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던 조령원터를 비롯해 조선시대 세워진 한글로 된 산림보호비 산불됴심비(문화재자료 제226호), 45m 길이의 3단 폭포인 조곡폭포 등이 있다. 2관문에서 3.5㎞를 더 가야 하는 3관문은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던 조곡약수, 문경새재 아리랑비, 색시폭포를 지나 조선시대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장원급제길을 지난다.

국내 최고(最古) 옛길 ‘하늘재길’

[코스] 충주 미륵대원지~미륵리 원터~미륵대원지 삼층석탑과 미완성 불두~연아 닮은 소나무~하늘재 정상석

풍경길 하늘재길은 충주와 영남의 관문인 문경을 잇는 길이다. 서기 156년 개척된 이 길은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영남과 서울을 잇는 죽령보다 2년, 조령(문경새재)보다는 무려 1000년이 앞선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석굴사원 터인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와 공주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경순왕의 아들과 딸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패망의 슬픔과 함께 신라의 부활을 꿈꾸며 각자 길을 떠났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는 미륵리에서 머물던 날 밤,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는 현몽을 꿨다. 같은 시각 마의태자처럼 현몽을 꾼 덕주공주는 제천 월악산에 덕주사를 짓고 마애불을 세웠다. 이에 마의태자도 누이 덕주공주가 세운 덕주사를 향해 북쪽을 향해 석굴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백두대간 고갯길 가운데 나지막하고 평이한 편에 속하는 풍경길 하늘재길은 1800년의 세월을 넘어 힐링 산책로로 주목받고 있다. 하늘재 정상석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선 피겨퀸 김연아가 머리 뒤로 들어 올린 발을 양손으로 잡고 도는 비엘만 스핀 동작을 빼닮아 ‘연아 닮은 소나무’라 불리는 나무도 볼 수 있다.

위인들의 숨결이 깃든 ‘대관령옛길’

[코스] 대관령 하행휴게소~풍해조림지~국사성황당~반정~옛 주막터~우주선화장실~어흘리~바우길 게스트하우스

강원 강릉의 대관령을 따라 이어지는 대관령옛길은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 영동과 영서의 관문 역할을 하던 대관령옛길은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서울을 오가던 길이며 송강 정철 선생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던 시절 관동별곡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정조대왕의 어명을 받아 금강산과 관동팔경 일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던 단원 김홍도는 대관령길에서 강릉을 바라보며 대관령도를 그렸다. 대관령 하행휴게소에서 출발해 바우길 게스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비순환형 코스인 ‘대관령 너머길 01코스 대관령옛길’은 이처럼 역사 속 위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백두대간의 뿌리인 태백산맥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일석이조 걷기여행 코스다.

숲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죽령옛길’

[코스] 죽령옛길~용부원길~장림말길

경북 영주의 죽령옛길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옛길로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이야기가 깃든 길이다. 죽령옛길에서 시작해 용부원길을 거쳐 장림말길까지 이어지는 ‘소백산 자락길 03코스 죽령옛길’은 길이 11.4㎞의 비순환형 코스다.

영주에 속한 죽령옛길은 죽령마루에서 시작하는 길이 2㎞의 비교적 짧은 숲길이다. 충북 단양에 속하는 용부원길과 장림말길은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마을길이 중심이다. 예부터 험하기로 유명하던 이 길은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로 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고도 지나던 곳이다.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선비부터 봇짐과 행상을 찬 보부상, 고을에 부임하는 관리 등 1000년 동안 각자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갔다.

깊은 산 속 옛 고갯길 ‘장성새재길’

[코스] 남창탐방지원센터~새재화장실~장성새재 갈림길~장성새재 고갯마루~입암공원지킴터

장성새재는 전남 장성과 전북 정읍을 잇는 대표적인 옛고개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던 호남 선비들이 장원의 꿈을 안고 이 고갯길을 넘었다. 이후엔 군사작전도로로 쓰임새가 바뀌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포함돼 비교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와 정읍시 신정동을 잇는 장성새재길은 험준한 백암산(해발 741m)과 입암산(626m) 사이에 절묘하게 숨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선 이처럼 두 산을 사이에 두고 숨어있는 이 길을 달도 숨어 안 보일 정도로 깊은 고개란 뜻의 월은치(月隱峙)라 기록하고 있다. 장성새재길은 전체적으로 코스가 평이해 걷기여행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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