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벌링턴 아케이드 19세기 느낌, 럭셔리 콘셉트 되살려 '부활'

입력 2019-04-18 16:17  

Let's Study 복합상업시설 (4)·끝



틈만 나면 비가 오는 영국 런던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기후가 좋은 동네에 개발되는 널찍하고 쾌적한 오픈스페이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악천후를 피하기 위해 뚜껑을 씌운 ‘스트리트 아케이드 쇼핑몰’을 만들어야 하는데, 세계 최초로 이런 시도를 한 곳이 런던의 부촌 피카디리 스트리트와 본드 스트리트 사이에 있는 벌링턴 아케이드다. 올해로 200주년을 맞은 영국 최초의 아케이드형 쇼핑몰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자.

쇼핑 아케이드이기 전에 벌링턴은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 메인 거리에서 한 블록 안쪽에 있는 개인 저택 부지였다. 1815년 로드 조지 카벤디시가 부지를 매입해 약 3년간의 사업성 검토 기간을 거쳐 아케이드로 탄생했다. 총장이 무려 180m에 달한다. 벌링턴 아케이드는 모든 가게가 개별적으로 테라스와 매대를 놓을 수 있는 복층구조다. 1층은 숍으로, 2층은 상인들의 주거공간으로 구성했다. 멋진 지붕과 요크 스톤으로 덮인 플로어, 전에 없던 형태의 숍들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828년 모두 55개 상점 운영

초기 벌링턴 아케이드는 주로 트렌디한 패션과 관련된 아이템을 취급하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1828년 기준 총 55개의 상점으로 이뤄졌으며, 점포는 여성 모자 8곳, 양복점 8곳, 원단숍 5곳, 구두잡화점 4곳, 미용실 3곳, 보석·시계 전문점 3곳, 레이스 전문점, 신사용품 전문점, 플라워숍, 숄 메이커숍, 상아세공사, 유리공방, 안경숍, 와인셀러, 베이커리, 서점, 사무용품점, 레코드숍, 화구점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꽤 다양했다.

200년 된 벌링턴 아케이드는 런던의 크고 작은 사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고, 두 번의 대형 화재로 대수선을 거쳤다. 하지만 점포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후기 벌링턴 아케이드는 화려한 금은방으로 알려졌는데, 1964년 복면을 쓴 5명의 괴한들이 차량에 탑승한 채로 아케이드 내부로 돌격해 3만5000파운드에 달하는 보석을 훔쳐 사라진 사건 때문이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이 사건은 런던의 대표적인 미결 절도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 이후 ‘벌링턴 아케이드=고급 액세서리’란 수식어가 붙어 2013년에는 보석 전문점만 16개에 달했다.

20세기의 지각변동

20세기 들어 유럽의 리테일 시장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실용적 물건을 만들어내던 유럽 각국의 장인들이 제품에 로고와 정체성을 부여하며 상품 가치를 선전하기 시작했다. 브랜딩 시대가 열렸다. 매장 공간 역시 중요한 브랜딩 요소가 됐다. 특히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멋을 한껏 부린 대형 공간을 플래그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990㎡(약 300평) 이상의 본드 스트리트를 따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대형 매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유닛당 면적이 42㎡(약 13평)에 불과한 벌링턴 아케이드는 자연스럽게 열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긴 시간 수차례의 손바뀜과 전쟁, 화재 등으로 내장재의 조화가 깨져 정체성도 모호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건물 주인이 수차례 바뀌면서 임대료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최근 20년간의 투자수익도 초라한 성적을 보였다. 그러던 중 2010년 런던의 부동산 투자 전문기구 메이어 버그만과 미국의 부동산 투자 전문 사모펀드 소어에쿼티가 매입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활발하게 플래그십 스토어 개점 경쟁을 벌이던 2010년께 본드 스트리트에 입지한 물건들은 임대 시세가 전년 대비 약 20% 상승했다. 당시 메인 스트리트의 가장 목이 좋은 프라임 급지의 경우 임대 시세가 ㎡당 1000파운드(3.3㎡당 486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큰 폭의 상승률은 본드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 안쪽에 있는 벌링턴 아케이드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버그만은 벌링턴 아케이드를 매입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본드 스트리트와 벌링턴 아케이드는 거리상으로는 한 블록 차이지만 상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임차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에이전트들이 벌링턴 아케이드를 마케팅했으나 제자리걸음이었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3년간 표류했다.

버그만은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200년 동안 수차례의 대수선을 거치면서 벌링턴 아케이드는 깔끔해졌지만 19세기의 중후한 멋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176억원을 투입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플로어 디자인이다. 모든 자재를 영국산으로 사용해 1800년대의 느낌을 살렸다. 현대적이면서도 중후한 옛 멋을 되찾았다.

임차인, 전통으로부터 탈피

벌링턴 아케이드의 하드웨어와 달리 임차인 구성은 20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전통을 지켜왔다. 줄곧 럭셔리를 표방해왔으나 2000년대 들어 럭셔리의 타이틀이 바뀌었다. 이렇다 할 브랜드 없이 정통성만을 지켜온 벌링턴 아케이드는 자연스럽게 임팩트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임차인들은 임차료를 충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벌링턴 아케이드는 럭셔리 콘셉트를 부활시키는 동시에 임대 수익도 상승시키기 위해 점포 대수술이 필요했다. 럭셔리 콘셉트를 살려줄 만한 강력한 브랜드가 없던 고민은 샤넬 유치로 마침표를 찍게 된다. 벌링턴 아케이드의 임대담당자는 5개의 유닛에 샤넬과 샤넬 소유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공간과 럭셔리 브랜드의 조화는 프로젝트의 감도를 크게 올렸다.

대형 럭셔리 브랜드의 입점은 다른 ‘부티크 브랜드’(럭셔리보다는 저렴하면서 일반재보다는 고가이고 대량판매를 지향하는 브랜드)의 입점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국의 고급 수제화 처치스와 프랑스 글로벌 브랜드인 라뒤레, 빌브레퀸, 이탈리아 라펄라, 싱가포르의 악어가죽 럭셔리 잡화 브랜드 콴펜까지 고급 브랜드의 입점이 이어졌다. 벌링턴 아케이드는 이제 런던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세계의 고급 부티크 브랜드의 데뷔무대로, 브랜드들이 입점 경쟁을 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2010년 약 1억파운드를 투자해 매입된 벌링턴 아케이드는 처음부터 재무적인 측면이 면밀하게 고려된 건물이었다. 임대 전략 수립과 임대 실행을 맡았던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런던지사에 따르면, 2013년 프로젝트 이전의 벌링턴 아케이드 임대 시세는 ㎡당 700파운드 안팎이었으며 공실도 많았다. 지금은 1100파운드(3.3㎡당 490만원)에 달한다. 방문객 역시 크게 늘어 2016년 기준 400만 명에 육박해 상점 매출 역시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2018년 벌링턴 아케이드는 익명의 개인 투자자에게 3억파운드에 매각돼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다.

김성순 <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리테일그룹 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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