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自强과 동맹강화가 한반도 안전 수호"

입력 2019-05-08 18:01  

황쭌셴《조선책략》


[ 김태철 기자 ] 한반도 정세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책이 있다.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黃遵憲·1848~1905)이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을 통해 조선에 건넨 《조선책략》이다. 원제는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으로 ‘조선이 앞으로 취해야 할 외교 전략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란 의미다. 한글 번역본으로 A4용지 열 장 남짓한 분량의 짧은 글이다.

구한말 일개 청나라 외교관(일본주재 공사관 참찬관)의 ‘개인적 견해’가 국내에서 여전히 회자(膾炙)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조선책략》이 담고 있는 주변 강대국의 역학구도에 다소 변화가 생겼지만, 한반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열강의 각축장이다.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외교에 실패한 대가가 식민지 전락과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뼈아픈 교훈도 되새기게 해준다.

강대국의 각축장 한반도

《조선책략》의 핵심은 ‘친중(親中)-결일(結日)-연미(聯美)’다. 중국과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일본과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과 연대해 러시아 남하를 막고 자강(自强)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조선을 위한 조언 같지만 저변에는 중국의 세계관과 현실적 이해가 깔려 있다. 당시 중국은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이권침탈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흑룡강 동쪽까지 진출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일본도 사할린을 두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다. 두만강을 경계로 맞닿아 있는 조선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면 중국은 더 이상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1000년간 조선의 우방인 중국은 한번도(조선의) 땅과 백성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 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땅을 잃어버리면 조선이 스스로 영토를 보전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학정에 반발해 독립한 미국은 제국주의 유럽 국가와 소원하지만 아시아 국가와 친하다. 항상 약한 자를 도와주고 공의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조선이 미국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조선책략》은 조선에 대한 종주국 지위는 유지한 채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새로운 적’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청나라 의도를 담고 있다. 사실상 조선을 위한 책략이 아니라 ‘청나라를 위한 책략’인 셈이다. 황쭌셴이 ‘개인 의견’이란 꼬리표를 달았지만 당시 청나라 실권자인 리훙장(李鴻章)과 그의 측근인 일본 주재 청나라 공사 허루장(何如璋)의 지시로 《조선책략》을 조선에 건넨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책략》이 일본을 과소평가하고 제국주의 속성 파악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지만 당시 풍전등화의 처지인 조선 조정엔 ‘한 줄기 빛’으로 여겨졌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어두워 청나라 속셈을 읽을 능력조차 없었던 조선은 《조선책략》의 조언에 따라 1882년 서방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는 등 본격 다자외교의 길로 나아갔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내용 자체만 보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조선이 열강과 맺은 근대적 조약 중 사실상 첫 ‘평등조약’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관세자율권을 처음으로 인정받았다. 통상·항해 조약 등에서 한 나라가 어느 외국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조건인 ‘최혜국 대우’도 처음 등장했다. 조약 제1조인 ‘거중조정’ 항목도 눈에 띈다. ‘제3국이 조약 체결국(조선과 미국) 일방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는 나머지 일방이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한다’고 명시했다.

조·미 수교는 미국에 대한 조선 조정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고종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미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미국 선교사들을 호의적으로 대접했다.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등은 이승만 등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

오락가락 줄대기 외교의 '비극'

《조선책략》은 중국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쓰여졌지만, 조선과 같은 약소국에 현실적인 타개책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동맹 강화와 열강의 세력균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라를 안정시키고 앞선 문물과 제도를 도입해 부국강병을 이루라”는 궁극적인 메시지를 담아서다.

하지만 조선은 자강을 소홀히 한 채 강대국에 줄서기만 하다 망국(亡國)의 비운을 맞았다. 임오군란(1882년), 갑신정변(1884년), 청일전쟁(1894년), 아관파천(1896년), 러일전쟁(1904~1905년) 등을 거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를 오가며 줄대기 외교만 하다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오락가락하는 외교 탓에 제대로 된 동맹국도 만들지 못했다. “힘이 약하면서 명분이나 이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변고가 일어난 뒤에야 어찌할지를 몰라 당황하는 것은 무책(無策)”이라는 《조선책략》의 경고 그대로였다.

북한 핵폐기 방법 등을 둘러싸고 한·미·일 동맹이 예전 같지 않은 요즘, 어떤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해야 하는 저주를 받는다”(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충고가 여전히 유효한 한반도 상황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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