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한국 농업,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선진화 못 하죠

입력 2019-05-13 09:02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농가에 '재정지원 중독' 아닌 자생력을 길러줘야 한다

지난해 농가 연평균 소득(4207만원)이 사상 처음으로 4000만원을 넘었다는 소식이 반갑다. 농가 소득이 한 해 전(3824만원)에 비해 10% 증가한 것도 주목된다. 때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선제적 시장격리’에 따른 쌀값 안정이 농가 소득을 향상시킨 첫 번째 원인”이라고 설명하는 보도참고자료를 내놨다. 정부가 2017년 9월, 공공비축미 외에 쌀 37만t을 추가 매입한 덕분에 시중 쌀값이 상승해 농가 소득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농식품부는 시의적절한 정책이 효과를 냈다는 것을 알리려고 이 자료를 냈겠지만, ‘이런 식의 정책이 합당한 것인가, 또 언제까지 지속 가능하겠는가’ 등의 생각이 들게 한다.

우선 ‘선제적 시장격리’에 들어간 비용 문제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2017년 농민들로부터 쌀 37만t을 추가 구매하는 데만 약 7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쌀 추가구매는 가뜩이나 ‘처치 곤란’ 상태인 쌀 재고물량을 더 늘렸고, 재고관리를 위한 예산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식생활 변화로 국민 1인당 연간 쌀소비량(2000년 93.6㎏→2018년 61.0㎏)이 크게 줄고 있지만, 대다수 농가가 보조금 타기 쉽고 짓기 쉬운 쌀농사를 고집하고 있어 ‘쌀 과잉’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이다. 2016년 236만t이었던 정부 쌀 재고물량은 2017년 244만t으로 늘어 쌀 재고관리비로만 7560억원이 쓰였다.

정부가 쌀 농가 소득을 받쳐주기 위해 투입한 막대한 돈이 세금에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2017년 기준으로 농가 세금 감면 등 간접 지원액을 제외한 정부의 직접적인 쌀 농사지원 예산은 농식품부 전체 예산의 39.2%인 5조6800억원이었다. 정부가 세금을 살포해 쌀값을 올린 것만큼 국민들의 식비(食費)는 급등했다. 2016년 말 12만8800원이던 쌀 한 가마니(80㎏) 산지가격이 지난해 말에는 19만3172원으로 2년 새 50%나 뛰었다.

이런 식의 억지 농가보호 정책을 계속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은 정부도 농가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후 2015년까지 농가·농업 보호, 농업시설 확충 등에 투입된 재정자금은 약 186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농업 경쟁력 강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돈질’한 것 말고 제대로 된 농업정책을 편 게 있었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업은 신(新)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글, 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첨단 식물농장인 ‘스마트팜’과 관련한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한국과 비슷한 농촌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쌀 직불금제를 폐지하고 토지소유와 농업 규제를 풀어 민간 자본과 기술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차제에 우리나라 농업정책을 원점에서부터 꼼꼼하게 돌아보고 유효한 대책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보조금에 기댄 소규모 ‘농사’ 수준에 머물러 있는 농촌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농업’ 단위로 키우는 방안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 첨단 농업과 신기술 농업에 민간 자본이 집중 투자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혁신을 거부하고 ‘보조금 중독증’에 걸린 농업에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5월 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한국 농업은 과도한 보호대상
자본·기술·인력 물꼬 터줘야
생산성 높은 농업의 산업화 가능

한국에서 농업은 늘 과도할 정도로 보호의 대상이었다. 세계적인 개방과 교역 확대의 거대한 트렌드에 의존해 경제를 일으켰지만 농업 문제에서는 그런 방향과 반대로 이행해왔다. 시장의 문을 걸어잠근 채 영세 농업, 소수의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 농업을 잘 키워 수출산업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보자는 꿈도 가지기 어려웠다.

국제 시세보다 월등히 비싼 쌀값만 해도 국내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 밀린 결과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추구해온 시장개방과 자유로운 무역 및 투자 확대에 힘입어 경제를 성장시켜왔고, WTO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면서도 쌀시장은 꼭꼭 잠그면서 한국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쌀은 생명이다’ ‘쌀은 주권이다’는 식의 다분히 감성적이고 선동적인 구호에 휘둘린 결과이기도 했다. 현대생활의 필수 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를 100% 수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견뎌내는지 의아할 정도다. 쌀과 석유 중에 더 중하고 덜 중한 것이 있나.

문제는 이런 인식 때문에 산업으로서의 ‘농업’이 발달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근대적 ‘농사’로 정체되면서 자본이 몰리지 않고 젊은 세대들이 관심도 두지 않는 분야가 돼버린 것이다. 성장과 발전의 축에서 농업은 악순환 구조에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 성장 궤도를 놓치게 되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거나,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게 일반적 행태다. 더구나 농업계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을 저지하면서 영농의 과학화·대형화·첨단화는 멀어지기만 했다.

보조금에 기대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산업화를 도모할 수 있는 분야는 드물다. 농업만이 아니다. 한국 농업도 산업화의 길로 제대로 가면 ‘프리미엄 농산물’로 중국 등지로 수출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먼저 보조금에나 기대는 수세적 태도에서 벗어나면서 자본과 기술, 고급 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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