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일본의 '오모테나시 외교'

입력 2019-05-22 17:44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1983년 11월 일본 도쿄도(都) 니시타마군 히노데마을의 총리 별장.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전통식 화덕을 갖춘 다다미방에서 일본 예법으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차를 달여 정성껏 대접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론”과 “야스”라고 부르며 최고의 동맹을 구축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오모테나시(お持て成し·극진한 대접) 외교’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오모테나시란 접대를 뜻하는 일본어 ‘모테나시(持て成し)’에 정중한 표현의 접두어 ‘오(お)’를 붙인 말이다. 요즘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2의 ‘론-야스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접대 외교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골프와 미식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 9일 만에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찾아 일본제 ‘혼마’ 골프채를 선물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에도 첫 일정을 골프로 잡고 ‘필드의 우정’을 다졌다.

이틀간 네 차례 함께한 식사에서는 소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미국산 소고기 햄버거와 와규 철판구이를 내놓았다. 굽기 정도로 ‘웰던(well-done:충분히 익히는 조리법)’을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눈앞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철판구이를 골랐다. 쇠고기도 낮에는 미국산, 밤에는 일본산을 대접해 양국 간 균형을 맞췄다.

아베 총리는 2014년 모디 인도 총리에게도 이틀간 교토의 영빈관 정원을 거닐고 명승지를 안내하며 친밀감을 높였다. 그 덕분에 인도의 고속철도 도입 사업에서 일본 신칸센이 채택됐다. 지난해에는 모디 총리를 별장 만찬에 초청해 일본 별미를 대접하며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한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오는 25~28일 도쿄를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스모 관람 때 일본의 오랜 전통을 깨고 방석 대신 전용 의자를 준비하는 등 파격적인 예우를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워싱턴 정상회담에 이어 내달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만난다. 3개월 연속 회동, 2년7개월간 12차례의 만남은 미·일 정상회담 65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이 그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외교적 결례까지 범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올해 ‘외교청서’에서 한국과의 갈등을 부각하며 노골적인 홀대를 해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일본의 ‘오모테나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게이시(けいし·輕視·경시)’를 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차분히 돌아봐야 할 때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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