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재정 부족에 시달리는 대학들

입력 2019-05-27 09:00  

Cover Story - 대학도 구조조정 시대

미래 투자는 엄두도 못내 과다한 '포퓰리즘'의 결과



[ 박종관 기자 ] ‘반값 등록금’ 정책을 시행한 지 11년. 대학의 ‘곳간’이 메말라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국내 사립대의 실질 등록금은 2008년과 비교해 16.5% 하락했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던 대학들로선 반값 등록금 정책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2016년부터는 사립대의 운영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상당수 대학이 적자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의 한 사립대 예산팀장은 “미래 투자는커녕 당장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추락하는 대학 경쟁력

가격 규제로 손발이 묶인 대학의 경쟁력은 악화일로다. 한국 대학의 위상 하락은 대학 경쟁력 평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QS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들은 2014년까지만 해도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이 새롭게 아시아 상위 20위 대학에 진입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새로 진입한 대학이 한 곳도 없다. 서울대 순위는 한때 아시아 4위까지 올라갔지만 작년엔 10위에 그쳤다.

미래 투자도 먼 나라 얘기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 등 신산업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지만 국내 대학은 이들 분야의 연구개발(R&D)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국내 전체 사립대의 자체 R&D 예산은 2011년 5397억원에서 2017년 4470억원으로 17.2% 줄었다.

인재 확보도 쉽지 않다. 국내 한 사립대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AI 분야 석학인 A씨를 교수로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A씨는 미련 없이 삼성전자를 선택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우리 학교에서 신임 교수에게 제시할 수 있는 연봉이 1억원을 넘지 못하지만 기업들은 우수 인재에게 2~3배 연봉을 준다”며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를 데려오려면 고액 연봉뿐만 아니라 전용 연구시설, 기본 연구비용 등을 모두 제공해야 하는데, 국내 대학의 재정 상황으로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 자율성 침범하는 교육부

대학은 최소한 법에서 정한 상한선만큼이라도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 고등교육법 11조는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4년제 일반대학 및 교육대학 196곳 중 2019학년도 등록금을 인상한 학교는 5곳뿐이다. 교육부가 국가장학금 Ⅱ 유형 제도를 통해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국가장학금 Ⅱ 유형의 지원 대상 학교를 등록금 인하·동결 대학으로 한정하고 있다. 국가장학금 Ⅱ 유형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학은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 역시 신청할 수 없다.

등록금 인상을 제지당한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더욱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재정지원 사업을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학을 이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교육부는 올초 대학혁신 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시간강사의 고용 안정성을 성과지표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학생 선발 방식 역시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위주 정시전형 비율을 30% 이상 늘려야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되돌릴 수 없는 포퓰리즘 정책

반값 등록금 정책이 대학 재정을 파탄 위기로 내몰고,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은 대부분의 고등교육 관계자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는 많지 않다. 주요 사립대 관계자들도 “등록금을 다시 올리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 끝에 탄생한 반값 등록금 정책의 태생적 특성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정책을 처음 제시한 쪽은 보수 정당이었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은 2006년 지방선거 때 표를 모으려고 과감한 ‘좌클릭’을 선택했다. 당시 내놓은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받아들여 시행한 것도 이명박 정부였다. 진보 정부 역시 ‘표를 잃을 수 있는’ 반값 등록금 정책 포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한계에 다다른 대학들이 곳곳에서 ‘SOS’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가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국 수십 만 대학생 및 학부모의 비판을 받을 게 불 보듯 뻔해서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반값 등록금은 보수와 진보가 합작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NIE 포인트

‘반값 등록금’ 정책이 도입된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 11년간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억제한 뒤 나타난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학의 자율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토론해보자.

박종관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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