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비용 폭등…기업 '新외감법 공포'

입력 2019-06-03 17:43   수정 2019-06-04 09:17

감사보수 놓고 계약 '진통'

바이오기업·증권사 등엔
최대 4배까지 인상 요구



[ 고윤상/김동현/오형주/조진형 기자 ]
상장기업의 올해 외부감사 비용이 50% 이상 뛴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보다 많게는 두세 배 올려달라는 회계법인 요구에 상당수 기업은 보수계약조차 맺지 못하고 있다. 중소 상장사일수록 비용 부담 급증을 호소하고 있다. 회계 투명성을 위해 올해부터 본격 적용된 신(新)외부감사법으로 감사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나타난 일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 200곳(유가증권시장 100개사, 코스닥 100개사) 가운데 107곳만이 올해 사업연도 감사용역 보수계약을 맺었다. 이들 기업의 외감 비용은 평균 6억3327만원으로 작년보다 52%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상장사는 아직도 외감 보수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장사(자산 1000억원 이상 비상장사 포함)를 시작으로 표준감사시간이 30%가량 늘어나면서 비용 인상을 각오했지만 받아본 견적서는 그 이상이다. 회계감사 비용을 단숨에 두세 배 인상해달라고 요구받은 기업도 적지 않다. 주로 회계기준이 깐깐해진 바이오기업과 투자자산이 많은 증권회사, 유형자산이 많은 유통기업 등이다. 한 증권사 회계담당 임원은 “회계법인들이 표준감사시간을 늘린 데다 시간당 보수까지 50% 가까이 올리면서 비용 부담이 두세 배 급증한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코스닥 기업 대표는 “외감 비용뿐 아니라 회계 인력 보충, 내부 회계관리제도 도입까지 부담이 이중삼중으로 커졌다”며 “가뜩이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중소기업들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호소했다.

회계법인들은 신외감법에서 요구하는 감사 품질을 맞추기 위해선 보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한 회계법인 임원은 “그동안 과도하게 낮았던 감사 보수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적자기업도 회계감사 비용 2~3배 뛰어…중소 상장사들 '악 소리'

코스닥 바이오 기업 젬백스는 올해 외부감사 보수로 3억원을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회계법인이 바뀌면서 지난해 8000만원에서 네 배 가까이로 뛰었다. 젬백스는 올 1분기에만 65억원 순손실을 낸 적자기업이다.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주)한화도 올해 외부감사인과 19억원에 계약했다. 지난해(9억원)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금액이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올해부터 본격 도입된 신(新)외부감사법으로 외부감사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실감사를 막기 위한 표준감사시간제도가 도입되면서 감사시간이 30~50% 늘어난 데다 시간당 단가도 큰 폭으로 인상되면서다. 특히 중소 상장사들은 “외부감사 비용이 오를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처럼 사업 리스크가 크거나, 증권 건설회사처럼 보유 자산이 많은 기업일수록 인상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감 보수 두 배 인상 속출

3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200개 상장기업(유가증권 100개, 코스닥 100개)의 1분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외감 보수를 확정한 107개사의 평균 외감 비용은 6억3327만원으로 지난해보다 52.0% 늘었다. 이들 기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두세 배 인상된 비용 청구서를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장기업도 적지 않다. 외감법에 따라 자산 2조원 이하 기업들은 2월 중순까지 회계감사 계약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상당수 기업은 보수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미 외감 보수가 두 배 이상 인상된 사례도 적지 않다. 유가증권시장에선 GS리테일(전년 대비 116.3% 급증) 한화(111.1%) 한국전력(110.3%) 금호석유(107.7%) 대한항공(105.0%), 코스닥시장에선 젬백스(275%) 원익IPS(141.2%) SK머티리얼즈(110.0%) 티씨케이(100%) 등이 대표적이다.

시행 첫해 중소 상장사 직격탄

올해 감사 보수가 대폭 오른 건 표준감사시간제도 영향이 크다. 양질의 외부감사를 위해 기업마다 적정한 감사투입시간(표준감사시간)을 정해놓고 해당 시간만큼 감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상장기업은 올해부터 적용받고, 비상장기업은 올해 자산 규모 1000억원 이상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지난 2월 외감보수와 직결되는 감사시간을 직전연도보다 30%(자산 2조원 이상은 50%)를 넘길 수 없도록 했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제한폭’이 오히려 ‘허용폭’으로 적용되고 있다. 시간당 보수까지 기존보다 50% 안팎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비용이 두 배 이상 뛰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표준감사 시간이 늘어난 반면 회계사 인력은 제한돼 있어 감사 기업 자체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보수를 높일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너무 적게 줬던 외감 보수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감사시간은 신외감법이 예고된 지난해부터 이미 늘어났다. 지난해 코스닥시장 시총 상위 100개 기업의 외감 시간은 평균 1657시간으로 전년(1416시간) 대비 17.0% 늘었다. 그 여파로 비용도 23.1% 증가했다. 유가증권시장 시총 상위 100개 기업도 감사 시간이 14.4%, 외감 보수는 15.9% 증가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가격 협상력이 약한 코스닥 상장 중소기업일수록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연구개발비 등에 대한 회계처리가 민감한 바이오 기업도 비용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양파 같은 ‘회계 지출’

외감 지출만 늘어난 게 아니다. 중소기업들은 외부감사인 이외에 추가로 회계법인을 고용하고 있다. 신외감법상 감사인이 재무제표를 대리 작성하거나 컨설팅해주는 관행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비용도 적게는 연간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른다.

내부회계관리 비용도 무시 못한다. 회계법인들이 감사의견과 별개로 내부회계관리제도도 깐깐하게 검증하기 시작하면서다. 새 외감법 시행으로 내부통제 검증이 한층 까다로워졌다. 올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한 검토의견이 아니라 감사의견을 받아야 한다.

기업 내부에서는 회계 업무 폭증으로 인한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한 코스닥기업 회계 담당자는 “과거에는 감사에 필요한 최소 자료를 받아갔던 회계법인이 지난해부터는 회사와 관련된 사실상의 모든 자료를 요구해 업무량이 급증했다”며 “인력을 보충하려 해도 회계사들이 중소기업을 꺼려 고충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한 중소 상장사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적 요인으로 가뜩이나 비용부담이 늘어나는데 감사비용까지 급증해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며 “회계 투명성을 위해 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중소 상장사의 어려운 현실도 감안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윤상/조진형/김동현/오형주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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