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자사고 폐지 정책 vs 고교평준화 정책

입력 2019-07-17 18:00  

'고교평준화' 40년간 단계적 시행했는데
'자사고 폐지' 밀어붙이기로 논란 자초

김동윤 지식사회부 차장



[ 김동윤 기자 ] 지난 9일 서울교육청이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평가대상 13개 학교 중 8곳을 지정취소해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학부모와 학교, 교육단체 등은 앞다퉈 성명을 내놨다. 자사고 교장 및 학부모 등이 모인 자사고공동체연합은 “각본에 짜 맞춘 부당한 평가는 원천무효”라고 성토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대통령과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자사고 존폐 문제가 결정돼선 안 된다”고 거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단체가 모인 서울교육단체협의회도 “서울교육청의 ‘봐주기 평가’ ‘눈치보기 평가’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13개 학교 중 5개 학교는 지정취소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대응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평준화의 대안으로 자사고를 급격하게 늘린 이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자사고 존폐 문제를 놓고 줄곧 대립해왔다. “수월성 교육을 위해선 자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특권층을 위한 입시학원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 교육감들은 선거 당시 ‘자사고 폐지’를 교육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서울교육청을 비롯 올해 자사고 재지정평가를 시행한 각 시·도교육청은 어떤 결론을 내놨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책 집행이 절실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정반대 길을 갔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2015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의 학교 운영 성과가 대상이다. 그런데 각 시·도교육청은 작년 12월 말에야 평가기준을 공개했다. 자사고 측이 “출제 범위도 모르고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사회통합전형’ 선발 의무가 없는 전국 단위 자사고에 이 기준을 적용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북교육청은 재지정 기준 점수를 다른 16개 시·도교육청보다 10점 높은 80점으로 설정해 형평성 논란을 자초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자사고 폐지에 찬성하던 이들조차 이번 재지정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문제점을 얘기하면서 박정희 정권 시절 단행된 고교평준화 정책을 언급했다.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는 학령인구 급증으로 고교 입학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고입 시험을 폐지하고, 추첨에 따라 고등학교를 배정하는 ‘고교평준화 정책’을 마련했다. 제도 시행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먼저 한 뒤 1975년 3개 도시, 1979년 7개 도시 등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교평준화 작업이 완료된 시점은 제도를 시행한 지 40여 년이 지나서였다. 이 관계자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고교체계 개편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했는데, 민주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는 진보 교육감들이 이토록 독단적으로 자사고 폐지를 밀어붙이는 건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국가 백년지대계인 교육 문제에 관해 보수와 진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컨센서스를 도출해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되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자사고 폐지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교육당국이 보여준 모습이 과연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교육계에선 벌써부터 정권이 바뀌면 뒤집힐 교육정책 1호로 자사고 폐지를 꼽고 있다.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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