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김구 선생이 걸었던 '고난의 길' 5000㎞

입력 2019-07-25 17:30   수정 2019-07-26 01:21

백범의 길 상, 하


[ 윤정현 기자 ]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한반도 전역에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퍼져나가면서 일제의 탄압은 더 잔혹해졌다. 독립운동가들은 거점을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독립 투쟁의 여정은 상하이에서 항저우와 자싱, 전장에서 난징과 광저우를 거쳐 류저우, 이산으로 이어졌다. 치장, 충칭을 거쳐 시안에 이르기까지 27년간 이동한 고난의 길은 5000㎞가 넘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의 기획으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 전문가 11명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백범의 길》에 담았다. 권역을 나눠 답사하고 자료를 연구하며 여러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시간 순으로 상, 하를 구분했다. 상권은 상하이에서 전장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치 활동과 피란 생활의 흔적을 따라간다. 윤봉길의 ‘폭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상하이병공창 창장이었던 쑹스뱌오와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을 숨겨 주고 자싱으로의 피난을 도운 미국인 피치 목사 부부의 일화가 눈길을 끈다. 1932년 일제의 감시 속에서 상하이를 떠나 자싱으로 탈출하는 과정은 긴박하게 펼쳐진다. 김구 선생이 상하이에 입성할 때 이용한 부두와 난징에 남아 있는 선생과 관련된 사적들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다.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 200여 명의 고단한 여정은 하권으로 이어진다. 이사는 더 잦아졌고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사흘간 기차를 타는가 하면 40일간 배로 이동하기도 했다. 생활은 궁핍했고 공습경보엔 동굴로 피신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 민족 진영 3당 청년들이 통합해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를 결성했고 김구 선생은 한국광복군으로 정식 군대를 꾸려 훈련했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은 발간사에 “한 조각 한 조각 힘들게 맞춰 나갔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풀리지 못한 자락들이 많다”고 썼다. 역사의 의미와 기록의 소중함이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김광재 김주용 등 지음, 아르테, 상권 364쪽, 하권 292쪽, 각 2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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