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대법원의 '일제 징용' 판결 첫 공개 반박

입력 2019-07-31 16:42   수정 2019-07-31 16:54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시효 소멸, 일본 판결 등 무시하고 신의성실이나 공서양속 원칙 위배 같은 추상적 이유들로 기존 법체계 흔들어"



현직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일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 반박했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시효 소멸, 일본 최고재판소 확정 판결 등을 무시하고 신의성실이나 공서양속(공공 질서와 선량한 풍속) 원칙 위배 같은 추상적 이유들로 기존 법체계를 흔들었다는 이유에서다.

김태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8기)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징용배상판결을 살펴보기’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103매에 달하는 글을 올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2건을 조목조목 따졌다. 해당 판결은 이춘식(95)씨 등 4명이 2005년 제기한 일제 강제 징용 피해 배상 소송이다. 1심과 2심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신닛테쓰스미킨(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줘야 한다고 판단했으며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김 부장판사는 “내가 재판을 했더라도 1심·2심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마 대부분의 판사들도 기각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판사들이 원고의 청구가 부당하거나 원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일본을 두둔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리 가는 것이 맞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소멸시효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민법(766조)에서 소멸시효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인데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 이후 50여년이 이미 흘렀다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은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으며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2005년에 공개됐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이 소멸시효를 늘려줬는데 이런 논리가 확장되면 소멸시효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일본제철의 피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봤다. 그는 일본제철이 당시에 징용을 했던 회사로 보기 어려운데도 공서양속 위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무리하게 책임을 지웠다고 주장했다. 일본제철이 피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이름만 바꿨다는 식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 부장판사는 헌법을 기반으로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내려진 원고들의 패소 판결을 국내에서 인정해주지 않은 것도 법을 임의로 다룰 수 있게 하는 여지를 키웠다고 꼬집었다. 한일청구권 협정의 해석을 두고 대법원이 개인의 청구권이 남아있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 △ 한일 양국과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에 관해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는 등의 협정서 내용을 명시하며 법률가가 아닌 일반 평균인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뜻을 드러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 청구가 넘어야 할 주요 장애 요소에 대해 신의성실, 권리남용, 반사회질서 등의 법리를 통해 제거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이러한 법리의 남용은 그 하나의 사건에서는 법관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민법의 일반조항들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민법의 법 조항과 법리들을 이러한 보충적인 법리로 허물어버리면 앞으로 많은 소송당사자가 법원을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이러한 법 적용을 받는 특혜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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