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사케'와 청주(淸酒)

입력 2019-08-04 17:42  

[ 허원순 기자 ] 축문(祝文)은 제사 의식에 필수다. 하지만 한문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한자로 된 축문이 암호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제례 축문에 ‘청작서수(淸酌庶羞)’라는 대목이 있다.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이란 뜻이다. 우리 전통주 청주(淸酒)는 이렇게 ‘맑은 술’이란 의미로 중의적으로도 쓰인다. 쌀과 누룩, 물이라는 재료는 같지만 맑은 부분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게 탁주(濁酒, 막걸리)다.

한국에 청주가 있다면 일본에는 사케(酒)가 있다.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하는데,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랄까. 사케를 흔히 정종(正宗)이라고도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부산의 청주회사 상표가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면서였다. 제조공정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애주가들은 고유의 맛과 향으로 둘을 구별한다. 술 제조용으로 따로 재배한 쌀을 쓴다거나, 밀로 만든 누룩을 쓰는 우리 술과 달리 쌀 누룩을 쓴다는 점도 사케의 특성이다.

사케는 쌀을 깎는 정도(정미율)에 따라 크게 8등급으로 나뉜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에 따라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한 병에 수백만원인 사케도 있다. 일본 사람들이 서양 와인과 비교하며 ‘신이 내린 술’이라고 사케 찬가를 늘어놓는 배경이다. 와인 열풍에 이어 국내에서도 사케붐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다. 2008년께 특히 두드러졌는데, 그때도 독도 문제로 반일감정이 들끓던 시기였다.

청주와 사케를 봐도 한·일의 문화에는 유사성, 공통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쌀에 의존해온 삶이다. 물론 산업화 과학화에 앞선 일본에서 들여온 게 많다. 일본종 ‘아키바레’ ‘고시히카리’를 빼고 우리 쌀농업을 말하기 어렵고, ‘부사(후지)’ ‘아오리’는 수십 년간 한국 사과시장을 석권했다. 교류·의존 산업은 여러 방면에 걸쳐 참 다양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결정 당일 한 일식당에서 마신 낮술이 사케였느니, 청주니 하면서 여야가 입씨름을 하고 있다. 각 당 대변인들의 날 선 공방에 조국 전 민정수석도 여당 옹호로 가세했다.

논쟁 수준을 보면 문제 제기나 변명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지금의 이 난관 돌파에 앞장설 수 있을까. 최소한 ‘국제분업’과 산업계의 ‘밸류체인’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언제까지 국민이 위험한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국회와 정부를 걱정해야 하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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