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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역사결의, 당 단합·투지강화에 도움"…"과거시비는 해결돼" 2021-11-12 13:17:53
경험 총결산에 중점" 문혁 등 정면 거론 안한 배경…"과거 중대시비는 1,2차 역사결의가 해결"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 공산당은 11일 채택한 제3차 역사결의의 방점이 과거사 오류 정리가 아니라 당의 미래를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는데 찍혀 있다고 밝혔다. 왕샤오후이(王曉暉) 공산당 중앙 선전부...
중국 40년만의 역사결의 채택…시진핑 장기집권 명분 담을듯 2021-11-11 07:00:02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로 덩샤오핑의 개혁 노선을 확고히 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이 결의는 또 마오쩌둥의 역사적 기여를 서술하는 한편 마오의 최대 실정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에 대해 "당과 나라와 인민이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했다"고 평가한 바...
내일 중국공산당 3차 역사결의…1·2차 무엇을 담았나 2021-11-10 17:35:20
"문혁은 마오쩌둥 동지가 발동하고 영도했다"며 마오의 주된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마오의 공적이 첫째라면 과오는 둘째라고 규정하면서 마오의 과오를 '마오쩌둥 사상'과 구별했다. 그와 더불어 문혁의 또 다른 주역인 '4인방(왕훙원·장춘차오·장칭·야오원위안)'의 권력 탈취 야심을...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아파트 4인방'은 사람일까 건물일까? 2021-11-01 09:00:38
같은 지면에 “중공은 … 지난 10월 숙청된 문혁급진파 ‘4인조’의 추종자들과 …” 같은 표현이 보인다. 본래 ‘4인방’은 문혁 기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등 4명의 공산당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나중에 이들을 숙청할 때 중국에서 ‘4인방’이란 용어를 썼는데, 한국에서도 이를 그대로 들여...
[천자 칼럼] '냥파오'와 '소분홍' 2021-09-09 17:38:47
문혁(文革)’이라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장기 집권을 노리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의도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3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내년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체제 단속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시 주석이 최근 ‘공동부유(共同富裕)’를 강조하며 기업에 재갈을 물리고 총수들을 퇴출시킨 것도 이와...
시진핑, 개교 110주년 칭화대 방문…'기술 자립' 의지 표명 2021-04-19 16:05:09
칭화대는 시진핑 주석의 모교로 문화대혁명(문혁)으로 인해 대입 시험이 중단됐던 1975년 추천을 통해 화학공정과에 입학한 바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날 칭화대에서 미술대학을 시작으로 영상 및 스마트 기술 실험실, 중점 교육 연구 성과 전시회와 체육관 등을 둘러봤다. 그러면서 개혁 심화와 인재 역량 강화, 연구 혁신...
"문화대혁명은 심각한 재난"…중국 고교 교과서에 추가 2020-09-06 11:38:38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강한 편이지만 문혁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려는 이들에게 반감을 표출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관영 신화통신의 퇴직 기자인 구왕밍은 최근 자신의 위챗 계정에서 "당이 1981년 언급을 고수해야 한다"며 "지난 40년간 규정된 길을 통해서만 문화대혁명의 충격을 제거하고 바른길로 걸어갈...
[다산 칼럼] 건국 70주년 중국, 어디로 가나 2019-09-22 16:44:03
넘쳐났다. 문혁 10년간 약 40만 명이 죽고 피해자는 1억 명에 달했다. 당은 1981년 역사결의에서 문혁을 “당과 국가 인민에게 중대한 재난을 가져다준 내란”으로 규정했다. 을 쓴 야부키 스스무 교수의 주장처럼 마오의 공상주의적 사회주의 모델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마오쩌둥의 말년은 참담했다. 후계자...
'중국 개혁개방' 주역 예쉬안핑 전 정협 부주석 별세 2019-09-18 20:18:12
자서전 서문을 쓰는 등 홍콩, 마카오의 재벌들과도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 예쉬안핑은 중국 건국 원로인 예젠잉(葉劍英) 전 공산당 부주석의 장남이기도 하다. 예젠잉은 1976년 문혁 4인방을 체포해 덩샤오핑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로, 예쉬안핑 가족은 혁명 원로 2세대인 '훙얼다이'(紅二代)의 대표 가문...
[특파원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8·15축사에 바란다 2019-08-13 17:38:20
문혁 당시 홍위병을 앞세워 1966년 덩샤오핑을 숙청하고 다시 권력을 잡았다. 문혁은 1978년까지 지속돼 중국을 수십 년 후퇴시켰다. 이에 수혜를 본 곳이 한국이다. 만약 마오쩌둥이 1962년부터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다면 같은 시기 산업화에 나섰던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