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옷장과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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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9-01 17:24   수정 2019-09-02 03:41

[한경에세이] 옷장과 냉장고

대부분의 여성은 두 가지 면에서 비슷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한경에세이 첫 글을 쓴다. “가을이 왔구나. 뭘 입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옷장 문을 열어 본다. 공통점 하나, 옷은 빼곡한데 입을 옷은 없다는 것. 오래된 옷이라 유행이 지났거나 몸이 불어서 끼거나 둘 중 하나다. ‘얼마 주고 산 옷인데…’ ‘유행은 또 돌아올 거야’라며 마음 한구석의 미련이 절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짧게는 한 달, 길어도 두어 달만 다이어트하면 다시 잘 맞을 것이라는 희망도 피어오른다. 수년간 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옷들이 옷장 속에서 숨만 쉬며 걸려 있는 이유다.

“추석이 오는구나. 음식 재료를 미리 사 놓을까?” 냉동실 문을 활짝 열어 본다. 공통점 둘, 대부분 모든 집의 냉동실엔 빈자리가 없다. 무엇이 들었는지 보이지도 않는 검은색 봉지들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만간 요리해 먹으리라는 다짐으로 넣어놨지만 다시 풀어보기 겁날 정도로 시간이 지나버렸다. ‘얼렸으니 괜찮겠지’라는 위안도 무색해진다. 요리로 만들어 상에 올리는 것은 이제 포기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혹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말하는 ‘뺄셈 경영’ 혹은 ‘버리는 경영’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간과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꼭 해야 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성공 확률을 높이고 실패의 범위를 줄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다. 올초 사장이 되면서 사장실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소파 세트를 치웠다. 외로울 정도로 공간이 휑하게 되니 생각의 여유가 생기고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공간의 변화가 사고의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비우고 채우는 연습을 해보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휴대폰을 잠시 쉬게 하자.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잠시 잊고 있던 열정, 나의 사람들을 찾아가는 연습을 해보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알차게 쓸 수 있도록 천천히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올 추석 연휴에는 ‘비우고 채우기’라는 결심을 해본다. 옷장이나 냉장고 정리뿐 아니라 넓히려고만 했던 관계의 재구성까지 포함한 의미다. 너무 가깝기에 늘 순서상 뒤로 미룬 가족과 ‘이해해주겠지’라는 편한 마음에 자주 연락하지 못한 주위의 소중한 분들과 따뜻한 시간을 갖겠다는 결심을 했다. ‘관계가 풍요로워질수록 관심은 빈약해진다’라는 말이 가을의 입구에서 더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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