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대 그리스인은 체육관, 로마인은 목욕탕서 책 읽었다

입력 2019-11-14 18:05   수정 2019-11-15 00:27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세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인류 역사상 ‘도서관’이란 명칭을 부여한 첫 사례였다. 기원전 295년 왕립학사원인 프톨레마이오스 무세이온 아카데미의 부속건물로 건립된 도서관의 원래 이름은 부루치움 궁정도서관.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몰수, 절도, 강압, 구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당대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도서관 자료도 모두 가져왔다. 그 결과 부루치움은 역사·법률·수학·과학·문학 등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40만~70만 장을 소장했다. 오늘날 300쪽 분량의 종이책으로 환산하면 13만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문헌정보학자인 윤희윤 대구대 교수가 쓴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제목 그대로 도서관으로 읽는 인류의 지식문화사다. 기원전 668~627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에 건립돼 설형문자로 기록된 점토판 문서를 보존했던 아슈르니팔 왕립도서관을 비롯한 고대 도서관부터 종교시설 부속으로 설립, 운영됐던 중세 도서관, 지식혁명의 거점이 된 근대 도서관, 민주주의의 요람인 현대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6000년에 이르는 인류의 지식보고를 동서양을 망라해 살폈다.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도서관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촘촘히 엮어냈다.

고대 그리스의 도서관은 다양했다. 기원전 6~5세기에 개인도서관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세운 학당인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이 대표적이다. 체육관 안에 도서관을 둔 경우도 많았다.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그리스 코스섬에 건립된 코스 도서관, 아테네 도심의 프톨레마이온 도서관 등이 그랬다.

고대 로마의 통치자들도 도서관 건립에 열을 올렸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폴로 신전 오른쪽에 비블리오테가 아폴리니스라는 공공도서관을 지었다. 체육관에 도서관을 둔 그리스와 달리 로마에서는 목욕탕 부대시설로 공공도서관을 뒀던 점이 이채롭다. 서기 216년에 완공된 로마 남단의 카라칼라 목욕탕은 도서관, 수영장, 체육관, 정원, 상점 등을 두루 갖춘 현대판 종합레저시설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세에 도서관을 발전시킨 것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과 부속 도서관은 고대 왕실 도서관과 근대 도서관을 연결하는 가교였다. 중세 수도원에서 지식은 신을 알현하는 통로였다. 이 때문에 수도원과 수도사에게는 책이 많이 필요했고, 도서관과 사서는 책의 수집과 보존을 책임졌다. 미소장 자료는 필사를 통해 보충했다. 책에는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했던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수도원부터 영국 휘트비 수도원, 스위스의 장크트 갈렌 수도원, 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 등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들이 소개돼 있다. 헝가리 판논할마 대수도원 도서관의 장서는 약 40만 권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오스트리아 아드몬트 수도원은 길이 70m, 폭 14m, 높이 11m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도원 도서관 덕분에 유명해졌을 정도다. 체코의 스트라호프 수도원도 수도원 자체보다 부속 도서관이 더 유명하다.

저자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한다. 그리스·로마의 유산이 사라질 뻔했던 위기의 시대에 서양 고대문명과 우수한 학문 지식을 수용해 발전시키고 고대 지식정보를 수집, 보존해 르네상스의 초석을 놓은 이들이 바로 무슬림이라고 강조한다. 그 바탕은 단지 예배당에 그치지 않고 학교, 병원, 도서관 등을 갖췄던 모스크였다는 설명이다.

중세에 종말을 고하고 근대의 태동과 발전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동양에서 전해진 인쇄술이었다. 특히 금속활자와 활판 인쇄술이 등장한 뒤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책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지식의 대중화와 지적혁명을 불러왔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도 그런 토대 위에 이뤄졌다.

동아시아에선 어땠을까. 중국에서는 상(商) 왕조 때 갑골문이 등장한 이래 기록물을 수장하는 공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때가 되면 책을 보관하는 장서처(藏書處)를 뒀다. 장서처의 담당자를 사(史)라고 불렀는데 ‘사기(史記)’에는 노자를 서고 관리자로 기록하고 있으니 노자가 중국 최초의 도서관장인 셈이다. 중국 역사에서 최대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72년 설치한 사고전서관에서 중국 전역의 도서를 모아 편찬한 ‘사고전서총목’으로, 1만160종, 17만2000여 권에 달한다. 한국의 고려대장경과 해인사 판전, 조선의 규장각 등도 세계 도서관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저자는 근현대 공공도서관의 태동과 확산까지 두루 살피면서 디지털 시대에 처한 도서관의 위기와 미래도 전망한다. 저자는 세계 여러 도서관들의 진화와 변화를 소개하면서 “미래 공공도서관의 로고스는 책 중심의 사회적 복합문화공간”이라며 “책과 사람, 문화와 학습, 준비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서관을 기대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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