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대란 조짐…로펌에 휴직·해고 문의 폭주

입력 2020-04-05 17:42   수정 2020-04-06 01:17


대형 로펌에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절차 등을 문의하는 기업들이 폭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검토하면서 법률 자문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5일 “무급휴직, 정리해고 관련 문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시행한 기업들이 성과가 나쁘지 않자 인력 감축을 고심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정리해고를 하려면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해고 회피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점도 인정받아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코로나發 감원 태풍' 부나…로펌에 '구조조정 자문' 급증
경영 어려워진 기업 늘면서…임금 삭감 절차 등 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고민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대형 법률회사(로펌) 노동팀에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위한 법적 절차를 묻는 기업관계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 조상욱 율촌 변호사는 “로펌 노동팀은 전형적으로 불황기에 일감이 늘어나는 조직”이라며 “단기적인 코로나19 대응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임금 삭감, 저(低)성과자 처우 문제 등을 문의하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해고 회피 노력이 급선무”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경영상태가 심각해진 적지 않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검토하면서 로펌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한국은 해고에 매우 엄격한 법체계가 있어 정리해고 준비부터 실행까지 3~6개월이 걸리고 해고 요건도 까다롭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정리해고 요건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등 네 가지다.

이 변호사는 “현재 코로나19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예전보다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수월해졌다”며 “인력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받거나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해고회피 노력을 한다면 정리해고가 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휴가 사용을 강제하고, 권고사직을 압박하는 것은 법률상 불가능하다. 모두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신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전환배치는 가능하다. 김상민 태평양 변호사는 “전보 발령 시 해당 직원의 ‘생활상 불이익’과 ‘업무상 필요성’을 골고루 따져 시행하지 않으면 법적 효력이 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은 아예 한국 시장 철수를 검토 중인 곳이 늘고 있다. 한 변호사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 기업은 물론 매출이 부진한 다국적 기업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아예 한국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사업을 전면 재편하기 위해 국가별 로펌에 문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정규직 채용 대신 전문 업체에서 인력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고용 방식을 바꾸려는 외국 기업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휴직수당 문의 ‘봇물’

기업들이 ‘사업장 내 코로나19 확진자 또는 의심환자 발생 시 대응 조치’를 시행함에 따라 휴업수당과 관련된 문의도 크게 늘었다. 특히 매출이 급감하면서 평균임금의 70% 이하로 휴업수당을 줄 수는 없는지 등을 문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휴직에 관한 문의도 많다.

송현석 광장 변호사는 “코로나19에 따른 부품공급 중단, 예약 취소, 매출 감소로 휴업하거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머물러 며칠 동안 회사(매장)를 폐쇄하는 경우에도 회사는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을 줘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통상 법원의 판례는 회사의 귀책 사유를 넓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장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휴업한 경우 휴업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때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휴업수당은 법상 평균임금의 70% 이상이어야 한다. 70% 미만을 지급하려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제 사례는 많지 않다.

김동욱 세종 변호사는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사정을 감안할 때, 70% 미만을 주는 사례도 생겨날 것”이라며 “이럴 경우 보통 기업은 휴업수당 대신 노동조합과 합의해 유급휴직을 시행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주가 감원 대신 유급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수당의 일부를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3개월(4~6월) 동안 한시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수준을 모든 업종에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이 밖에 재택근무제 또는 원격근무제 시행에 따른 ‘재택·원격근무 인프라 구축 지원제도’, 유연근무제 도입에 따른 ‘간접노무비 지원 제도’,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사업주 융자제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융자제도’ 등도 활용할 만하다는 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로펌 노동팀 ‘조직 확대’

로펌들은 노동팀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전문가 모시기에 나섰다. 재판과 수사가 지연되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송무와 자문 매출이 급감한 로펌 입장에선 노동팀이 주요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이기 때문이다. 노동팀의 업무 영역도 기존 노동 관련 재판과 조사·수사 대응 수준에서 노사 관계 컨설팅, 기업 내부비리 조사, 산업 안전, 직장 내 괴롭힘 분쟁 등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주완 김앤장 변호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전담 변호사는 시장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며 “선진 사회로 갈수록 노동법률 전문가가 필요해진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노동전담 변호사만 70여 명으로, 국내 로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태평양과 광장은 최근 최대술 전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장과 전운배 전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을 각각 영입해 노동팀 강화에 나섰다. 광장은 자사 홈페이지에 코로나19 전용 자료실을 별도로 개설했고, 율촌도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는 등 인사·노무 자문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세종 인사·노무전문팀은 다른 경쟁 로펌에서 3~4명의 노동전담 변호사를 영입해 덩치를 키울 예정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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