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김환기·이중섭·백남준…한국 거장 40명 대표작 한자리에

입력 2020-04-26 18:26   수정 2020-04-27 00:40


1972년 서울 인사동 네거리의 현대화랑(지금의 갤러리현대)에서 이중섭(1916~1956)의 유작전이 열렸다. 유화, 수채화, 은지화, 데생 등 10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대화랑과 구상, 김광균, 박고석, 최순우, 이경성, 이종석, 이구열 등 이중섭과 인연이 깊은 이들이 전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장가를 찾아 대구 부산 통영 진주 제주 등 전국을 발로 뛴 결과였다.

전시는 대성황이었다. 전쟁과 가난, 유랑생활로 마흔에 요절한 천재화가의 비극적인 삶이 새겨진 작품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이 수십m씩 줄을 섰다. ‘이중섭 붐’이 일면서 그의 삶을 다룬 평전과 영화, 연극 등이 잇달았다. 호당 5만원에 거래되던 그의 작품이 1990년대 초에는 국내 작가 최초로 호당 1억원을 호가했다. 이중섭의 인기와 함께 현대화랑은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당시 유작전에 출품됐던 이중섭의 ‘황소’ ‘통영 앞바다’ ‘닭과 가족’ 등 1950년대 작품 세 점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 다시 걸렸다. 개관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현대 HYUNDAI 50’에서다.

1970년 4월 4일 현대화랑으로 문을 연 갤러리현대는 국내 최초의 상업화랑으로 손꼽힌다. 작가와 소장가 사이에서 미술품 거래를 본격적으로 중개하는 현대적 의미의 화랑을 지향하며 동양화와 고미술품 중심이던 인사동에서 처음부터 동양화와 서양화를 함께 다뤘다.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백남준 등 근현대 대표작가들을 잇달아 발굴한 것은 그래서 가능했다.

1부와 2부로 나눠 펼쳐지는 이번 특별전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400여 회의 개인전과 400여 회의 기획전에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 근현대 미술과 갤러리현대의 역사를 동시에 조망한다. 근현대 미술 대표작가 40명의 작품 70여 점을 선보이는 1부가 펼쳐지는 갤러리 신관과 본관은 그야말로 명작, 걸작들의 향연이다.

최대 관심작은 신관 2층에 전시된 김환기의 ‘우주(Universe 5-Ⅳ-71 #200)’다. 지난해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2012년 갤러리현대의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전에 출품된 이후 8년 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지난해 경매 이후로는 국내 첫 공개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 ‘우주’는 김환기의 작품 중 유일하게 두 점으로 구성된 최대작이다. 가로, 세로 모두 254㎝에 달한다. 화면 상단의 점들이 원을 그리며 아래로 진동하듯 확장되는 모습이 관객에게 무한대의 공감각을 선사한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백남준의 대형 TV조각 ‘마르코 폴로’도 신관 1층에서 반긴다. 갤러리현대는 백남준의 한국 전속화랑으로서 그의 국내외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신관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계보도 확인할 수 있다. 갤러리현대는 구상이 화단의 주류였던 1970년대부터 추상미술가를 지속적으로 발굴, 지원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곽인식 권영우 김기린 김창열 김환기 남관 류경채 문신 박서보 서세옥 유영국 윤형근 이성자 이우환 이응노 정상화 한묵 등 추상미술 1세대와 ‘단색화’로 유명한 모노크롬 거장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본관 1, 2층 전시장에서는 권옥연 김상유 도상봉 문학진 박고석 변종하 오지호 윤중식 이대원 임직순 장욱진 최영림 등의 작품을 통해 구상미술 계보와 흐름을 살필 수 있다. ‘한국의 인상파’로 불린 오지호의 ‘수련’과 ‘항구’를 비롯해 도상봉의 정물화 ‘라일락’(1972년), 장욱진의 ‘동산’ ‘황톳길’, 박고석의 ‘외설악’, 이대원의 풍경화 ‘못’ 등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김기창 변관식 성재휴 이상범 장우성 천경자 등 동양화 거장들의 작품도 걸렸다. ‘금강산의 화가’라고 불린 소정 변관식은 생애 마지막 개인전을 1974년 현대화랑에서 열었다. 그때 전시됐던 말년의 대표작 ‘단발령’이 이번 특별전에도 나왔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김기창의 ‘청산도’와 ‘세 악사’, 장우성의 ‘일식’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장에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간의 전시 팸플릿, 각종 초대장, 작가와 갤러리 간의 편지, 미술계 인사들의 모습과 전시장 풍경이 담긴 사진 등이 곳곳에 배치돼 생생함을 더한다. 화랑을 개관하고 이끌어온 박명자 회장은 “좋은 화랑은 그 시대의 좋은 작품을 얼마나 많이 전시, 판매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로 가름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화상(畵商)으로서 제가 지켜온 신념”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31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는 당분간 새로 개편한 갤러리 홈페이지의 ‘스토리즈’ 섹션에서 온라인 프리뷰 형식으로 소개되며 일반 관람은 다음달 12일부터 가능하다. 1990년대 이후 국제화 시대를 맞아 갤러리현대에서 작품을 선보인 국내외 작가 40명의 작품을 소개한 2부 전시는 6월 12일부터 7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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