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의 '천박한 도시'…'서늘한 두려움' 어디갔나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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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26 16:33   수정 2020-07-26 16:50

이해찬의 '천박한 도시'…'서늘한 두려움' 어디갔나 [홍영식의 정치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15 총선’뒤 압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보다 ‘반성’과 ‘교훈’을 꺼내 주목 받았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깊이 반성한다”며 “(당시)우리는 승리에 취했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생각만을 밀어붙였다”고 했다. 또 “그 결과 (2007년)17대 대선과 (2008년)18대 총선에서 81석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이 교훈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15 총선 압승’과 관련, “7선을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뜻에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서늘한 두려움도 느낀다”며 “언제든 심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열린우리당의 교훈이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전개된 정치 상황을 뜻한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풍’에 힘입어 과반 의석을 얻었다. 특히 ‘탄돌이’로 불린 108명의 초선 의원들의 기세는 등등했다. 이들은 천둥벌거숭이처럼 제각각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 ‘108번뇌’로 불렸다. 운동권 출신으로 당시 ‘386(1960년대생, 1986학번의 30대)세대’로 불린 이들이 전위대가 돼 ‘개혁’을 밀어붙였다. ‘개혁’은 ‘완장’이 됐고, 이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 ‘반개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추진된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과거사진상규명법안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안이었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딛혔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국보법 폐지를 막기 위해 장외로 나갔다. 협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열린우리당은 밀어붙였다. 열린우리당 내부 치열한 계파 간 다툼까기 겹쳐 여론은 여당에 싸늘해졌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대표를 맡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얻은 배경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창당기획단장을 맡아 당을 만드는 초석을 깔았고, 2004년 총선 승리 뒤 국무총리에 오른 이 대표는 당시 이런 상황을 잘 알기에 ‘심판’ ‘두려움’이란 단어를 써가며 교훈으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총선 압승 3개월여 밖에 지나지 않은 민주당 사정은 어떤가. 두려움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들도 제기되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중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한 기자가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며 언성을 높였다. 이어 질문한 기자를 노려보며 “XX자식 같으니라고…”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파문은 그치지 않았다. 지난 25일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표현한 것이 논란을 낳았다. 그는 이날 세종시청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프랑스) 센강 같은 곳을 가면 노트르담 성당 등 역사 유적이 쭉 있고 그게 큰 관광 유람”이라며 “그것을 들으면 프랑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 우리는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 가지고 단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안전하고 품위 있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그런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앞뒤 문맥은 생략한 채 특정 발언만 문제 삼아 마치 서울을 폄훼하는 것처럼 보도한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서울의 집값 문제,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조차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 여당 대표라면 문맥 전체의 의미를 떠나 ‘천박’이란 표현 자체가 불러올 논란을 예단하고 조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대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산에 올 때마다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해 파문을 낳은 적이 있다.

민주당이 총선 이후 3개월여 동안 민심에 불을 당긴 사례는 일일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 이수진 민주당 의원의 ‘판사 탄핵 추진’, ‘n번방’공범 변호인의 공수처장 추천위원 지명,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직접 고용 문제를 두고 벌어진 불공정 논란, 윤미향 의혹 함구령,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부적절하고 뒤늦은 대처, 성추행 피해호소인 표현 등이 연이었다. 부동산 정책 실효성 논란, 그린벨트 해제를 두고 벌어진 엇박자까기 겹쳤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긍정 평가가 하락해 부정 평가보다 낮게 나오는 ‘데드크로스’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율도 떨어져 미래통합당과 격차가 좁혀졌다.

민주당이 총선 압승 3개월여만에 왜 이렇게 됐을까.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진단이다.

?여권 위기 원인이 무엇인가.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문제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얘기한 것 처럼 현 집권 세력의 도덕적 파탄을 의미한다. 도덕성이 무너지니까 중도층이 이탈하는 것이다. 여권 5대 핵심층은 30대와 여성, 진보, 호남, 사무직이다. 이 층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무능한 정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30~40대가 정책적 무능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 입법을 밀어붙여 지지율 하락을 가져온 것도 정책 실패 때문이었다. 집권당이 총선 이후 스스로 견제받지 않는 오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무능한 데다 오만하기까지 하니 반감이 강해진 것이다.”

?지지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조셉 나이가 쓴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를 보면 국민의 기대와 정부에 대한 인식이 조화를 이뤄야 성공한 정부가 된다. 그러나 이 정권은 정책적 무능과 도덕적 타락, 권력적 오만 세 가지가 묶여 있기 때문에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권력의 힘을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협치하겠다고 했으면 거기에 걸맞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이념적 잣대를 기준으로 자기편만 쓰지 말고, 진짜 최고의 전문가를 기용해 효과를 내는 게 필요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무슨 부동산 전문가인가.”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 내에서 잇단 소신 발언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을 얻은 김해영 최고위원은 현 상황을 ‘민주당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좀 더 겸손하게 국민에게 다가가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하고, 당에 불리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국민들 눈 높이에서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며 “다양한 의견들이 소신있게 표출되는 분위기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위원에 도전한 이원욱 의원은 여권의 위기 원인으로 ‘내로남불’식 태도를 꼽았다. 그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과 정의기억연대 사태 등을 그 예로 꼽으며 “민주당에 실망하는 국민은 공정함을 잃은 것에 대한 실망”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에 대해 “정치적 반대세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며 “민주당과 함께한 세력이라고 해서 무죄추정 원칙으로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된다고 한 것은 내로남불식 태도”라고 비판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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