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뿌리 깊은 美 인종차별의 민낯

입력 2020-08-27 17:30   수정 2020-08-28 03:11

미국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자벨 윌커슨이 2011년 출간한 《다른 태양의 온기(The Warmth of Other Suns)》는 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여름 휴가 책으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윌커슨은 이 책을 통해 100여 년 전 미국의 흑인들이 남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차별과 혐오가 인구의 대이동을 촉발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1915년부터 1970년까지 약 600만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자유를 찾아 짐 크로 시대의 남부를 떠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구 이동이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출간된 윌커슨의 신작 《카스트(Caste)》는 카스트 제도의 어두운 민낯을 고발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계층과 계급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구분짓고, 그로 인해 어떤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되고 있는지 낱낱이 들춰낸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해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의 흑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미국 사회에 엄중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흑인을 향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드러난 의료 차별이 맞물리면서 이 책은 더 주목받고 있다.

카스트 제도가 인도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카스트는 세계 어떤 곳이든 존재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추방하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미국의 인종 차별 시스템을 연구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 시스템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보다 미국의 카스트 제도가 더 위험한 이유다. 불문법이나 관습법처럼 눈에 보이는 제도보다 잘 보이지 않는 제도의 뿌리가 더 깊다. 그래서 더 공고하다.

저자는 “카스트는 마치 어두운 극장에서 자리를 안내하는 표시와도 같다”고 꼬집는다. “작은 불빛은 좁은 복도를 따라 어디로 걸어가면 되는지, 그리고 이미 지정된 좌석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고 덧붙인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고, 실제로 그런 압박과 기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카스트는 마치 자동조정장치처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카스트 제도를 떠받치는 ‘여덟 가지 기둥’도 소개한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인간을 차별하는 것이다. 신성한 의지와 자연법칙, 유전성, 동종 결혼과 짝짓기 법칙, 순수혈통 대 오염혈통, 직업 계급, 인간성 말살과 낙인, 테러와 폭력, 내재된 우월감과 열등감 등이다. 저자는 카스트가 사람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삶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결국 국가의 운명마저도 뒤흔들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키노트 논픽션’(뉴욕타임스), ‘행동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행동 촉구’(워싱턴포스트), ‘모든 미국인들의 필독서 리스트’(시카고트리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라이브러리 저널) 등 주요 언론들의 호평을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도 선정됐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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