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미켈란젤리, 완벽주의 피아니스트의 초상

입력 2020-10-29 17:15   수정 2020-10-30 02:35

카레이서였고, 의사에 버금가는 의학 지식도 있었다. 콘서트용 피아노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얘기다. 1920년 이탈리아 브레시아 태생인 그가 세상에 온 지 100년이 됐다.

1939년 제1회 제네바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미켈란젤리에게 거장 알프레드 코르토는 ‘리스트의 재래’라고 찬사를 보냈다. 병으로 주춤하다 30대에 연주활동을 재개했으나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은 행운아였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공연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녹음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가 1970~1980년대 도이치그라모폰(DG) 레이블에서 쇼팽, 드뷔시, 베토벤, 모차르트 협주곡 등을 음반으로 발표한 건 애호가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켈란젤리가 만들어 내는 음색과 소리는 투명하고 아름답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늘게 떨리는 피아니시모부터 압도적인 포르티시모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진폭이 크다. 귀에 들어오는 연주는 세련된 감각으로 마감돼 있다. 템포에 미묘한 변화를 주는 주법과 손가락이 건반에 부딪치는 충돌음을 억제한 완충작용이 만들어낸 특성이다.

8장의 음반에는 협주곡과 독주곡이 비슷한 분량으로 담겼다. 코르드 가르벤이 지휘한 북독일방송교향악단과의 모차르트협주곡 13·15·20·25번에서는 천재의 작품을 미려한 세공으로 더 빛낸다. 예민한 감성으로 재단됐기에 듣는 이는 편하게 접할 수 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하는 빈심포니와의 베토벤협주곡 1·3·5번을 들어보면 육중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전혀 눌리지 않고 작곡가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듯한 영롱한 터치에 반한다. 5번 ‘황제’는 원래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예정됐던 녹음이었다. 함부르크에서 공연하고 베를린에서 녹음을 시작했는데 악단원들의 악보에 표시된 지시들을 보고 미켈란젤리가 불쾌감을 표시하자 의욕을 잃은 클라이버가 녹음을 포기했다. 미켈란젤리는 협주곡을 연주할 때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연주했다.

BBC 방송음원인 슈만의 ‘사육제’와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는 1957년이란 녹음 연대에 비해 상당히 양호한 음질을 들려준다. 쇼팽은 10곡의 마주르카와 전주곡 Op.45, 발라드 1번, 스케르초 2번 등이 실렸는데, 울림 자체만으로도 듣는 이를 설득하는 힘이 대단하다.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손아귀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던 작품의 형상을 잡을 수 있게 한다. 영상 1권과 2권, 전주곡 1권과 2권, ‘어린이 차지’ 등 클로드 드뷔시의 독주곡이 그 예다. 색채의 팔레트와 시적이고 부유하는 듯한 향기는 음악 예술의 고결함과 맞닿아 있다.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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