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크기 초미니 교회서 열린 결혼식, 어느덧 100번째

입력 2018-10-08 14:50  

8㎡ 크기 초미니 교회서 열린 결혼식, 어느덧 100번째
제주 순례자의 교회, 의미 있는 결혼식 하려는 커플들 줄이어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오늘 결혼식이 풍성하고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결혼식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가족과 당사자들이 기쁨과 감동으로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8일 제주도 서쪽 끝자락인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8㎡ 규모의 '초미니 예배당' 순례자의 교회에서 황태철·임지은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들 부부는 교회당 봉헌 이듬해인 2013년 1월 25일 이 교회 첫 웨딩마치 이후 여기서 결혼한 100번째 커플이다.
이날 결혼식은 신랑·신부와 가족 등 10명에 사진작가, 주례인 순례자의 교회 김태헌 목사까지 총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결혼식장이라고 하기엔 비좁은 공간에서 소박하게 치러졌지만 화촉점화, 예물 교환, 주례사, 기도, 양가 부모에 인사, 기념촬영까지 결혼식 과정 전반이 충실히 이뤄졌다.
식 말미에는 신랑·신부가 마주 보고 서서 앞으로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꾸려갈 것을 다짐하며 포옹했다.
김 목사는 부부에게 결혼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기도하며 앞날을 축복해줬다.
이들 부부는 서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서 이곳에서 결혼하기로 했다. 신랑 황씨가 과거 여행 중 이 교회를 찾았을 때 '여기서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신부 역시 조용하고 소박한 결혼식을 원했다고 한다.
신부 임씨는 "웨딩홀에서 하는 결혼식은 사람이 많고 번잡해 정작 주인공인 신랑·신부에게 집중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의미 있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부 어머니도 "큰딸 결혼식을 치를 때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 둘째 결혼식은 부부를 축복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며 "사돈댁에서도 허례허식을 싫어하셔서 양가의 의견이 맞았다"고 말했다.
이날로 100번째 주례에 나선 김태헌 목사는 "순례자의 교회가 검소한 결혼식의 메카가 된 것 같다"며 "허례허식으로 치장돼 비용이 많이 들고, 가벼운 이벤트가 되는 결혼식이 아닌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찾는 자리가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곳은 기독교인가 아닌 이들에게도 열려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 중 신랑·신부 모두 비신자인 경우가 절반가량 된다.
부부 중 한쪽이 중국, 일본, 벨기에, 폴란드 등 외국인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부부 중 한국인인 쪽이 주례사를 통역해준다.
이곳에서 결혼한 뒤 아이를 낳았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온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서 몇년 뒤 제주에 이주한 부부도 있었다.
김 목사가 주례를 선 결혼식만 100번이고, 커플이 찾아와 조용히 언약식을 하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100번의 결혼식이 열리는 동안 많은 에피소드도 쌓였다.
양가 부모나 증인도 없이 신랑·신부 둘이서 결혼식을 할 때 교회를 구경하러 온 여행객들이 즉석에서 결혼식 증인이나 하객으로 섭외되기도 한다. 성악을 전공한 여행객이 교회를 들렀다가 결혼식을 보고 현장에서 즉석에서 축가를 불러준 일도 있었다.
사진작가를 섭외하지 않고 신랑·신부가 직접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갖고 온 디지털카메라가 방전돼 애를 먹기도 했다. 결국 김 목사가 주례하면서 사진을 찍고, '셀카'로 셋이서 기념사진을 찍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자녀가 이곳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해도 부모가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갈등을 채 풀지 못하고 결혼식을 치렀는데, 식후에 '여기서 결혼식 하기를 잘했다'며 마음이 바뀌어 돌아가곤 한다"며 그런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곳에서 결혼한 부부들에게 종종 문자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이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는 "주례의 역할이 단순히 결혼식 집전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책임감이 막중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순례자의 교회에서는 다음 달에도 결혼식이 2회 예약돼있다. 내년 결혼식을 일찌감치 예약한 커플도 있다.
김 목사는 "제 역할은 부부가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행복을 향한 여정의 시작을 축복해주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리려는 부부들을 위해 기꺼이 주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ato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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