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워싱턴DC 상공의 헬기 소리

입력 2020-11-01 07:07  

[특파원 시선] 워싱턴DC 상공의 헬기 소리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지난 5월 말과 6월 초에 며칠은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심야까지 가까이서 들려오는 헬리콥터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전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시위 초반 약탈과 폭력사태가 발생하면서 며칠간 워싱턴DC를 헬기 소음이 뒤덮은 겁니다.
당시 의무후송용 헬기의 저공비행으로 시위대 해산을 위협했다는 의혹까지 일 정도로 헬기는 꽤 낮게 날았습니다. 밤에는 소음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워싱턴DC에서 헬기 소리가 들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처음엔 신기해서 자주 올려다봤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낮부터 밤까지 하루의 긴 시간을 헬기 소음에 노출돼 있는 건 꽤 고역이었습니다.
낮으면서도 묵직하게 진동하는 소리를 종일 듣다 보면 조금씩 어질어질하다가 나중엔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잠이 들었다가도 헬기 소리에 깨고 나면 이유 없이 불안해져서 다시 잠들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괴롭히다 사라져서 몇 달간 잊고 있었던 심야의 헬기 소리가 다시 생각난 건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지만 미국에서는 대선을 눈앞에 두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우편투표가 급증하면서 예전처럼 개표가 신속히 이뤄지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양극화의 심화로 한쪽이 대승하지 않는 한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극성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급기야 폭력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심심찮게 다루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양극화 심화가 대선과 만나 가져올 수 있는 예측 불가의 상황에 따라 대선 당일이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닌 혼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은 겁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몇 달 전부터 대선 결과 승복 여부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확답을 피해왔습니다. 코로나19로 급증한 우편투표에 대해서도 사기라는 주장을 계속해왔습니다.
예측 불가능성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개표가 시작된 후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대선인 셈입니다.
민주주의의 보루를 자처해온 미국에서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국 비영리기구 '갈등을 넘어'를 만들고 남아프리카와 북아일랜드처럼 분열이 심한 지역에서 민주주의 증진 활동을 해온 팀 필립스는 미 공영방송 NPR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비슷한 상황에 처할 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각지의 분쟁 해결 지원 및 개발도상국의 공정한 선거 보장을 목표로 해온 비영리기구 카터센터는 지금 미국 대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합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세운 기구입니다.
이제 미국 대선은 정말 코앞입니다. 이번 대선을 치르며 워싱턴DC 상공에 또다시 밤늦게까지 헬기가 뜨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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