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반기업정서 보고서④] 정책·행정 눈 가린 반기업정서

신인규 기자

입력 2017-02-23 18:07   수정 2017-02-24 18:06


최근 정치권은 ‘재벌개혁’을 임시국회 주요 과제로 내세우며 상법 개정안 통과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개정안 찬성론자들은 이번 상법개정안이 기업의 자율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상법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의 경영권이 심각히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상법개정안 통과에 가장 큰 변수는 현재 찬반론자들의 주장과 합리적 근거가 아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만들어낸 높은 반기업 여론입니다.

상법개정안에 ‘최순실 프레임’ 씌운 정치권

정치권은 상법개정안에 이미 ‘최순실 프레임’을 씌웠습니다. 박완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상법개정안을 통해 `제2의 최순실` 등장을 막자는 것에 어느 기업이 반대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내고자 하는 것에 어느 언론이 반대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법개정안이 곧 정경유착 근절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정작 상법개정안에 들어있는 세부안들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긍-부정적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습니다. 재계는 기업들의 지배구조개선의 필요성에는 동감하면서도 이번 상법개정안의 부작용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장기불황과 글로벌 경쟁 환경에 놓인 기업들에게 경영자율성마저 제한하면 자칫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테이블 데스’ 상태에 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한쪽 손만 든다...행정에 더해진 반기업정서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쇼핑몰 개발사업은 4년 동안 첫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한강 이북 최대의 상업시설이 될 것이라던 이 곳은 이제 서울 서북권 개발 난항의 상징이 됐습니다. 상업시설 용도로 롯데쇼핑에 땅을 판매한 서울시가 시민들의 반기업정서가 강해지자 인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해당 부지는 인근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이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개발에 난항을 겪게 됐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지난해 11월 전국상인대회에서 “상인들과 상생 없는 복합쇼핑몰은 서울시에 들어올 수 없다. 판 땅을 다시 사들일 수도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던 시절 ‘위코노믹스(불평등 해소와 재벌 개혁을 골자로 한 슬로건)’라는 경제 비전을 제시한 이후 서울시의 정책이 반기업적으로 가고 있다”고 날을 세운바 있습니다.

롯데는 내부적으로 이번 건에 대한 법정소송에서 나설 경우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법리적 해석 등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섣불리 소송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롯데가 거액의 출연금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에 혹시 맞게 될 반기업 정서 역풍을 우려해서입니다.

국내기업에만 적용되는 ‘반기업 정서법’

기업 내부의 전산관리 시스템의 개발이나 운용, 보수관리를 담당하는 것을 시스템통합, SI사업이라고 합니다. 지난 2013년 정부는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을 개정하면서 대기업 계열의 SI업체가 공공기관의 사업을 따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대기업 계열 SI 업체들은 대부분 재벌기업 오너나 2,3세가 대주주로 있다는 점과 이들이 계열사들의 일감을 독점하다 시피한다는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입법 시행을 앞두고 IT서비스의 질적 저하 우려와 대기업이 빠진 자리를 중소중견기업 대신 외국계 기업이 차지할 것이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관련법 시행 4년, 대기업 계열이 아닌 국내 시스템통합(SI) 회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대우정보통신입니다. 통계청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 사업을 따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곳의 주주 구성을 살피면 홍콩계 투자법인인 BJB-글로리초이스차이나가 대주주인 실정입니다.

2012년 대기업의 참여를 막는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분류된 국산 두부 시장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부 판매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풀무원마저도 이 법에 걸려 영업 확장이 제한됐습니다. 국산 두부시장의 생산액은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된 2012년 이후 3년 연속 줄어들었습니다.

법과 제도에 자리잡은 반기업정서는 상속세와 관련한 법안을 살펴봐도 확인됩니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경영권을 승계할 땐 65%의 상속세율이 적용됩니다. 2세 기업인이 주식 100주를 물려받으면 국가는 이 가운데 65주를 세금으로 거둬가는 셈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경제계에서는 현행 상속세법이 사실상 기업 상속을 막는 법안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기업과 부에 대한 반감에 개선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기업 정서 물만난 정치권...경제는 뒷전

조기대선을 치뤄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자 이른바 대권주자들은 포퓰리즘적 발언들을 서슴치 않습니다. 고조된 기업반감을 겨냥한 이들의 이런 발언은 속을 시원하게 한다는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주요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기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추세인 요즘, 지난 20대 우리 국회에 나온 경제관련 입법 590여개 중 기업 규제와 관련된 법안은 무려 407개나 됐습니다. 높아진 기업반감과 예상치 않게 빨리 돌아온 정치의 계절이 기업인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기획취재팀 신인규·김치형·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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