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후폭풍> 작동않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입력 2016-09-06 06:01  

정부는 한진해운[117930]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31일 부랴부랴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결정에 따른 경제적·산업적 영향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 입에서 한진해운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거의 2개월 만이다.

그만큼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과 관련해 시장에 주는 시그널은 부족했다.

경제수장인 유 부총리가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 등 정치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서별관회의 논란 등을 의식,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구조조정 최일선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모양새를 취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 입을 통해 "자구책 없이는 추가 지원도 없다"는 구조조정의대원칙만 간간이 나왔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내는 것이맞는지, 맞다면 그 대응책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챙기지 않았다.

물류산업을 책임지는 국토교통부나 해운산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역시 수개월동안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거론되는데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낀채 관전하는 태세로 일관했다.

결국 법정관리 이후 한진회사 보유 선박 중 절반 가까이가 운항에 차질을 빚는등 물류 대란이 발생하고서야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다.

'뒷북대응',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 컨트롤타워 신설했지만 또다시 부재 논란 그동안 주요 경제정책이나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관련한 의사 결정은 비공개경제정책협의회인 서별관회의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042660]에 대한 산은의 4조원지원이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됐다고 밝혀 파문이 일자 논란의 중심이 된서별관회의는 지난 6월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조선업 등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놓고 정부와 한은 간줄다리기가 계속돼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이 나오자 정부는 대신 산업경쟁력 강화관계장관회의를 신설했다.

관계장관회의는 유 부총리 주재 하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금융위원장이 상임위원으로 참여하며 관련 안건이 있으면 관계부처 장관 및 기관장(금융감독원장 등)도 참석자에 포함된다.

서별관회의가 '밀실회의' 등으로 논란이 되자 아예 공식 회의체를 구성,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관계부처 장관회의도 컨트롤타워 기능은 전혀 하지 못했다.

경제수장인 유일호 부총리는 '정치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된 이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등 경제법안처리를 위해 야당 설득에 매진하면서 정작 구조조정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지적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사실상 진두지휘해온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서별관회의논란이 나온 이후 목소리가 급격히 움츠러들면서 구조조정을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떠넘겨 버렸다.

이 와중에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등 관련 주무부처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파급효과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상황판단이나 준비를 하지 못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지난달 31일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도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원칙만 공개됐을 뿐 시장 혼란을 막을 구체적인 대응책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한진해운 선박 압류 등 물류 혼란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지난 4일 해수부에서 운영 중인 비상대응반을 '관계부처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로 확대 개편하고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 구조조정 원칙만 강조…후폭풍 오판에 혼란 키워 정부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엄격한 고통분담의 원칙하에 스스로 생존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한 구조조정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관계장관회의 및 산하 분과회의를 통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현실화될경우에 충분히 대비해왔다는 설명도 내놓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구조조정 원칙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했다"면서 "정부는 해운항만 물류 분야에 만약에 사태가 나면 어떻게 할지 논의했고 필요한 시나리오도 검토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진해운이 정상 영업상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선적 관련 화주 및 운항정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회사도 협조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역시 "부총리가 중심이 되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금융 이슈는 금융위원장이, 물류 관련은 해수부 장관을 중심으로 논의해왔다"면서 "다만 (물류 대응 문제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이 협조해야 하는 이슈인데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법정관리 들어간 뒤 한진해운의 협조를 받기까지 시차가 좀 있었다"고 말했다.

즉 컨트롤타워의 문제라기 보다는 현장에서의 정보 확보와 관련한 한진 측의 불성실한 협조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해운업 주무부처인 해수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구조조정 과정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수부가 세계 7위, 국내 1위 선사라는 한진해운의 업계 위상을 고려해 법정관리행을 주저하면서 물류 대응 방안 등 사전 준비는 전혀 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한진과 관련한 주주와 투자자가 있다 보니 향방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피해상황 예측 등을) 하기 어려웠다.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너무 안이한 대응을 한 것 아니냐는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 혼란이 예견된 상황에서 주요 항만 등을 중심으로 정부가실태를 파악한 뒤 시장에 미리 시그널을 줬다면 화주가 미리 선사를 바꾸는 등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한진해운과 채권단이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등을 압박해 자구안 규모를 키우는데만 관심을 가졌을 뿐 만약에 대비한 비상계획을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관련해 영국 정부가 국민투표 이전에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강력한 금융시장 안정 메시지를 던져 후폭풍을 최소화한 것과 대비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세계 10위권 대형 컨테이너 해운선사의 법정관리에 따른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톱 10 해운사들은 다 연계돼 있는데 정부가 컨테이너선 법정관리가 처음인 만큼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 "조짐 보였는데 정부 대처 늦었다…강력한 리더십 갖춰야"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한 박자 늦은 대응과 안이한 위기의식이 혼란을가중시켰다며 질타했다.

해운업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음에도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탓에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진해운은 2009년부터 조짐이 있었는데 정부가 안일한 생각에 빠졌다가 놓쳤다"라며 "작년 12월 미증유의 경제위기 예견에도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일부 시각에 매몰돼 정부가 구조조정을 실기했다"고 진단했다.

하준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진해운 문제가 STX처럼 법원으로 가게 될 수있다는 것은 이미 몇 번이나 거론된 시나리오"라며 "사고가 나고 불이 났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한진그룹 측에 원칙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구조조정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조치는 한진 측 대주주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경고를 날리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서 "한진의 태도에 문제가 있지만 경고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산업 전반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한진이 겪고 있는 영업자금상의 문제는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면서 "'질서있는 청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서별관회의 논란 탓에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강한 리더십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 부연구위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더라도 본인들이 행동을 정당하고신속하게 하지 못하면 국민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라며 "구조조정에 대해 어떤 비난이라도 책임지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성 교수는 "회사가 당장 청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를 시장에 주면서 법정관리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면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시장에 지속적으로 시그널을줘야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옛날처럼 정부가 나서서 물적 자원을 동원해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는 없다"라며 "정부가 어젠다 세팅을 하고 의제를 환기시키는 솔루션 위원회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pdhis959@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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