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말리부(Malibu)에 빼앗긴 말리부(Malibu)

입력 2013-07-11 10:10  


 미국 LA에서 서쪽으로 가면 서핑으로 유명한 해양 휴양지 '말리부(Malibu)'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본 적 있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런데 한국에도 말리부가 있다. 쉐보레 중형세단 '말리부(Malibu)'가 주인공이다. 미국은 해양 리조트, 한국은 자동차가 말리부다. 그래서 쉐보레는 자동차 말리부를 휴양도시 말리부에 투영시켰다. 
 




 ▲말리부 해안을 달린 말리부 
 한 곳에 머물며 휴식을 즐기는 말리부 해안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쉐보레 말리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그런데 말리부 해안은 가서 쉬고 싶은 곳이다. 야외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노을을 바라보며 칵테일 한잔 마시기 좋은 장소다. 함께 할 연인이 있으면 행복이고, 없어도 무방하다. 도시의 모든 일상을 잊고 머리를 텅텅 비워 놓으면 행복 두 배다.

 반면 쉐보레 말리부는 연료 태우면서 사람 이동시키느라 언제나 뜨거움에 시달린다. 운전자는 혹여 일어날 사고를 염려해 이동할 때마다 모든 신경세포를 곤두세운다. 머리부터 손발까지 온 몸에 긴장이 감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쉐보레는 말리부 출시 초창기 이미지를 말리부 해안으로 설정했다. 한 마디로 말리부를 말리부 해안의 아름다움에 비유했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었다. 여기에 편안함까지…. 하지만 착각이었다.

 오래 전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있다. 뒷골목 생활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던진 말 한 마디는 지금도 패러디 소재로 유명하다. "그렇게 해야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 쉐보레 말리부로 말을 바꿔 본다. "말리부 해안을 떠올려야 쉐보레 말리부가 잘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쉐보레 말리부보다 말리부 해안이 한국에선 더 유명하니까!"
 
 지난 2011년 10월, 쉐보레 말리부가 한국에 등장했다. 현대차 쏘나타와 르노삼성 SM5, 기아차 K5 등 쟁쟁한 중형차와의 한판 승부를 선언했다. 그리고 화려하게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기대는 월 판매 2,000대 이하라는 성적표로 되돌아 왔다. 그 해 12월에는 1,300대로 떨어졌고, 이듬해 1월은 급기야 1,000대 이하로 추락했다. 신차임을 감안하면 초라함이다. 

 여러 분석이 있었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쉐보레는 알아도 말리부는 모른다'였다. 하지만 출시 후 6개월 동안 쉐보레는 말리부를 알리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TV 등에 말리부 해안을 우아하게 달리는 쉐보레 말리부를 노출시키며 아름다운 스타일과 품격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말리부를 모른다'니 쉐보레도 답답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원인이 숨어 있다. '말리부는 알아도 쉐보레 말리부는 모른다'가 숨어 있었던 것.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을 달리는 쉐보레 말리부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말리부를 갖고 싶다'가 아니라 '말리부를 가고 싶다'였다. 제품을 알리려는 기업의 생각과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 이해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쉐보레 말리부는 없고, 캘리포니아 말리부만 보였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말리부 해안을 찾는 한국 사람이 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쉐보레 말리부 알리려다 캘리포니아 관광수입만 늘려 준 격이다. 






 ▲전화위복의 말리부  
 그럼 쉐보레 말리부는 실패 차종에 올려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런데 이유가 재미있다. 말리부 해안을 떠올리며 뒤늦게 쉐보레 말리부를 인지하고 있어서다. 기껏 말리부 해안의 쉐보레 말리부를 내세울 때는 몰랐다가 역동으로 이미지를 갈아타니 뒤늦게 소비층이 굳건히 형성되는 중이다. 지난해 판매량이 1만3,200대에 달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5,000대를 판매했다. 물론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18% 떨어진 것이지만 같은 역동 컨셉트인 기아차 K5의 전년 대비 하락율 34.9%에 비하면 선방이다. 그래서 쉐보레는 말리부를 '돌솥 같은 차종'으로 부른다. 늦게 온도가 오르지만 잘 식지 않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최근 쉐보레가 말리부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역동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경쟁 차종 대비 '우월'로 꼽을 수밖에 없는 송곳 같은 핸들링이 부각된다. 경험적으로 쉐보레 말리부 핸들링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내심 '진작 그랬어야 했다'고 여겼다.

 경쟁 차종 대비 부족한 각종 제원표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고유가 시대에 가속페달 끝까지 밟을 일 없고, 중량 부담의 효율은 운전습관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핸들링은 다르다. 개발 초기부터 염두에 두지 않으면 바꾸기도 어렵다. 그래서 쉐보레는 말리부 출시 이전부터 핸들링 강조를 계획하기도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선 것은 잘한 일이다. 이미지로 구입하는 물건이라지만 그래도 이동 기계라는 명제조차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쉐보레에 중요한 차종은 고유가 덕을 톡톡히 보는 스파크, 디젤 2.0ℓ로 차별화 된 크루즈, 쉐보레 엠블럼을 떼어 낸 알페온, 수출이 많은 아베오, 뒤늦게 2.0ℓ 디젤엔진이 탑재된 캡티바, 가족형 MPV로 주목받는 올란도가 아니라 말리부다. 사람으로 치면 쉐보레 제품 중 척추에 해당된다. 척추가 나쁘면 온 몸이 아프듯 말리부가 제 역할을 못하면 쉐보레도 아플 수밖에 없다. 연간 20만대 넘는 가장 큰 시장에서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제품 비교 적극 나서야  
 물론 지금은 아프다. 그러나 아픔은 치유될 수 있다. 정확한 원인 진단과 처방을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원인은 명확히 파악했다. 이미지보다 사실에 초점을 맞춘 광고가 그렇다. 품격에서 역동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중형 시대에 이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제품이 우선이다.

 이제는 그 다음이다. 한 가지 처방으로 쉐보레 말리부를 회복시킬 수는 없다. 오진으로 잃어버린 6개월을 만회하려면 적당한 운동이 병행돼야 한다. 말리부 제품력 부각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자면 눈앞의 숫자보다 돌솥 전략으로 가야 한다. 할인이나 초저리 상품은 순간의 고통을 줄이는 단기처방이다. 제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적극적인 비교 시승 등이 필요하다. 핸들링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체험하지 않으면 인정하기 쉽지 않다. 기회를 넓히는 게 우선이다. 과거 시승마케팅에 강했던 쉐보레의 면모가 되살아나야 한다. 강한 쉐보레, 그리고 강한 말리부를 기대해 본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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