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는리뷰] 임순례와 김태리의 마법 ‘리틀 포레스트’

입력 2018-03-04 09:00  


[김영재 기자] 2월28일 ‘리플 포레스트’가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리틀 포레스트’는?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7/5)

‘힐링(Healing)’은 마법의 단어다. 실체가 없는 치유를 전달한다. 잘 사는 것을 내세운 ‘웰빙(Well-being)’의 다음 주자 ‘힐링’은 한 지상파 방송사의 토크쇼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웰빙’이 왜 ‘힐링’으로 바뀌었는가를 두고 많은 이가 설전을 벌였던 때가 기억난다. 결국 모두가 지적하는 공통점은 삭막한 현실. 불안한 고용 시장과 조만간 현실화될 인구 절벽 앞에서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욜로(YOLO)족의 탄생은 마케팅 상술임과 동시에 필연이었다.

‘힐링’의 파도. 치유의 물결은 진실한 조언은커녕 돈을 벌기 위한 상술로 얼룩졌다. 나무에서 갓 딴 푸릇한 사과였던 ‘힐링’은 악취가 만연한 음식물 쓰레기로 변질되어 갔다. 더 이상 ‘힐링’은 사람을 치료해주지 못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는 ‘힐링’을 전면에 강조하는 상업 영화다. 상술과의 연관은 지당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시사회에서 임순례 감독은 “이런 영화가 잘 되어야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라고 했다.

과연 작은 규모가-순제작비는 15억 원이다.-‘힐링’의 상업화를 무효로 만들까?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조금 다르다. 다른 것처럼 착각하게끔 한다. 물론 시험에 낙방한 채 고향으로 내려와 예쁜 집에서 1년간 먹고, 자고, 농사일하는 미녀의 하하 호호를 보는 일은 판타지의 향유다. 그렇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임순례 감독이 요리로 간접 전달하는 인생의 지혜는 상술을 기꺼이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눈이 발목까지 오는 어느 겨울날 혜원(김태리)은 미성리를 방문한다. 쌀과 사과가 유명한 시골 마을은 물건을 사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 외지다. 아픈 곳만 콕콕 집어내는 은행원 은숙(진기주)과 ‘코찔찔이’ 재하(류준열)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닿은 고향 친구. 고향으로 도피한, 고향으로 돌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은 세 사람은 대한민국 사계절을 온 몸으로 맞아낸 농작물을 요리하고 또 먹는다. 온기 없는 집에 온기를 불어넣은 지 약 1년이 되는 때 혜원은 그만의 숲을 그려본다.

언론시사회에서 임순례 감독은 “도시의 얼굴을 보면 웃거나 행복한 사람이 없더라. 너무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환기를 도울 것 같았다”라고 했다.

실제로 ‘리틀 포레스트’에는 그가 지적한 요소가 작품을 지탱하고 있다. 혜원은 웃음을 띤 행복한 사람이다. “잔고가 상당히 없”는 상황에도 통장보다 친구를 먼저 걱정한다. 은숙은 고향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의 스트레스는 회사 상사이지 미성리가 아니다. 재하는 자연 앞에서 분노하기는커녕 겸허한 마음으로 농사일이 그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셋의 존재는 대중이 흔히 시골 감성에 기대하는 바와 어우러져 머릿속의 미세먼지를 타파시킨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의 ‘힐링’이 만능은 아니다. 주연을 맡은 배우 김태리는 “예고편을 보면 답을 찾으러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혜원이의 고향은 그런 것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힐링’의 기세가 꺾인 이유는 상술뿐 아니라 그것의 무효용성이 컸다. 안식과 치유 좋다. 그러나 ‘힐링’은 답 대신 위안을 줄 뿐이다. 위안은 일시적인 만족에 그친다. 근원을 해결하진 못한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강한 혜원은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관객 역시 함께 성장하는 듯한 착각을 가진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세트와 미술 그리고 대한민국 농촌의 사계절 풍광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그뿐이다. 영화관을 벗어난 다음날은 다시 오전 9시 출근의 일상이다.

더 냉정히 말하자면 ‘리틀 포레스트’에는 떨어져도 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청춘, 무작정 서울을 지향하는 청춘, 상명하복이 존재하는 회사에 아파하는 청춘이 있다. 관객이 안고 있는 아픔을 등장인물 역시 똑같이 안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진 않는다. 오직 한 인물만이 정답을 깨달은 듯 행동하지만 그는 정답을 모른다.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은 1년 사계절을 보내며 점점 사람이 되어가지만, 문제의 인물은 1년 동안 스스로를 무덤덤으로 포장한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의 존재는 상업 영화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은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リトル・フォレスト)’다. 지난 2015년 국내 개봉한 동명의 일본 영화처럼 수많은 요리가 ‘리틀 포레스트’를 감싼다. 된장찌개, 수제비, 배추전 등 곶감 같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것까지 합하면 약 17가지의 음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밥을 향한 등장인물의 집착은 대단해서 혜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식사를 준비하고, 결국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근원을 배고픔에서 찾는다. “밥은 먹었어?”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작품은 최근 개봉작 중 ‘리틀 포레스트’가 유일하다. 임순례 감독은 김태리의 ‘삼시세끼’ 혹은 ‘먹방(먹는 방송)’을 통해 관객과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지만 요리 및 농작물의 완성은 인내와 “타이밍”이 있어야 더 맛있는 과실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은연 중 전달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의 영화면서 동시에 문소리의 영화기도 하다.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가 배시시 웃고 있는 메인 포스터 하단을 자세히 보라. 문소리는 당당히 류준열 다음 세 번째 순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혜원의 엄마를 연기한 그는 예고편에도 포스터에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의 비밀 병기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그는 ‘리틀 포레스트’의 몇 안 되는 장년 배우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에게는 어떤 연기 칭찬도 사족이다. 기자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앞서 언급한 세 번째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연급 배우가 조연 분량으로 출연할 때 엔딩 크레디트와 포스터는 배우를 ‘특별 출연’이라고 부른다. 분량에 맞게 혹은 비중에 맞게 이름이 나열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이는 자발적 격하다. 문소리는 그의 이름을 세 번째에 올렸다. 당당한 문소리답다.

‘잠시 쉬어가도 / 조금 달라도 / 서툴러도 괜찮아’. ‘리틀 포레스트’ 예고편과 포스터 모두에 등장하는 문구는 사실 미운 한 줄이다. 잠시 쉬어가면, 조금 다르면, 서투르면 낙오되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럼에도 혜원, 재하, 은숙에게 돌아갈 수 있는 미성리가 있는 것처럼, 영화는 관객이 마음속에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작은 숲”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 속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고향을 현실화시킨, 관객이 ‘힐링’을 착각하게 만든 가히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의 마법이다. 2월28일 개봉. 전체 관람가.(사진제공: 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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