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 대 强' 맞선 韓·日…기업들은 속이 탄다

입력 2019-07-16 17:27   수정 2020-11-12 15:10


한국 간판 기업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불거진 한·일 양국 간 갈등이 ‘강(强) 대 강’ 구도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뾰족한 정치·외교적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전면전에 나서면 애먼 기업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번주 스마트폰사업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 사장단을 긴급 소집해 경영전략회의를 연다. TV사업을 맡은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단 회의도 예정돼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에 대비한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다른 주요 기업도 비상경영에 들어갈 태세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확전(擴戰)’에 불을 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일본의 경제보복을 놓고 “중대한 도전”이라며 “경고한다”고 방아쇠를 당겼다. 청와대 참모들도 ‘국채보상운동’(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죽창가’(조국 민정수석) 등을 거론하며 ‘결전’에 나선 분위기다.

기업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한·일 간 정면 대결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어서다. 일본 정부가 다음달 광복절을 기점으로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면 국내 산업 기반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가 정치·외교적 카드 없이 감정적으로 나가면 기업 입장에선 더 갑갑해질 수밖에 없다”며 “주요 산업 기반을 볼모로 한 도박을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방패' 없이 전선에 내몰린 기업들…"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대기업 A사 전략담당 임원은 지난 15일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 “결국에는 일본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공개된 직후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정면 대응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한·일 경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 전략팀은 장시간 회의를 거친 뒤 최고경영자(CEO)에게 긴급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이 경제 전쟁을 벌이면 양국 기업이 입을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라며 “기업들이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비상경영 나선 반도체업체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은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일본의 3대 핵심 소재(에칭가스·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 규제만으로도 공장 가동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한국과 일본이 강 대 강으로 맞붙으면 피해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알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을 확대하면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업체들은 핵심 소재 조달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긴급 물량을 확보하는 것 외에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3대 소재의 투입량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매일 재고 수치를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풀지 않으면 2~3개월 내 공장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를 전수조사한 뒤 국산화가 가능한 품목을 가려내고 있다. 이 회사의 김동섭 대외협력총괄 사장은 이날 소재 조달처 확보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삼성전자는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

“전면전 땐 한국 기업 피해 더 클 것”

다른 기업도 초비상이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주재로 16~20일 열리는 하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한·일 갈등 문제를 집중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은 지난 5~15일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그는 일본 현지에서 정·재계 고위인사들과 만나 이번 사태 해결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 등 다른 주요 그룹도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 대기업 CEO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하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대응은커녕 상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경제계에서는 한·일 양국이 경제 전쟁을 하면 한국 기업이 훨씬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데다 상대국 의존도는 한국이 더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9709억달러(2017년 기준)로 한국(1조6194억달러)의 세 배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은 일본에서 546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이에 비해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규모는 305억달러였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품 중에는 대체 불가능한 제품이 많은 게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가 마땅찮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이 일본을 제압할 방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맞대응 전략은 ‘보여주기’식 대응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보복 카드가 없다”며 “양국이 강대강 구도로 치달으면 한국 기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창민/황정수/도병욱/박상용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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