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 "떠나간 젊은 시청자 끌어오자"…TV의 유튜브 따라하기

입력 2019-10-04 17:36   수정 2019-10-05 00:18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힘은 뒷담화에서 나왔습니다.” “농업 혁명은 인류 최대 사기극이에요.”

평소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주제지만 호기심이 생긴다. 지난달 24일 첫 방영된 tvN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 나온 내용이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를 설민석 역사강사가 간단히 요약해 설명했다. 물론 책 자체가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흥미롭다. 그래도 누군가가 요약해주니 머리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다. 평소 책을 읽지 않거나, 보기 힘든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 열심히 듣고 있던 패널들은 책 앞부분의 몇십 페이지를 움켜쥐며 이렇게 말한다. “와, 벌써 책 이만큼이나 읽은 거네.”

그런데 왠지 포맷이 익숙하다. TV가 아니라 유튜브에서 많이 본 형식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책 큐레이션 영상들과 비슷했다. 유튜브를 통해 유명 ‘북튜버’들이 탄생하고, 이들이 소개한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이런 유튜브 콘텐츠의 형식을 TV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를 본격적으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이런 움직임은 일부 방송에 국한됐다. 2015년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유튜브처럼 개인 방송을 하며 사용자와 실시간 소통을 한 것 외엔 특별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근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아마도 TV를 떠나는 시청자를 잡으려면 더 이상 기존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화할 수 있을까.

‘무한도전’을 연출했던 김태호 PD의 복귀작 MBC ‘놀면 뭐하니?’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7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유튜브의 콘텐츠 확장 방식이 접목됐다. 개그맨 유재석 외엔 출연자가 특정돼 있지 않다. 유재석에 이어 카메라를 받은 사람이 내키는 대로 영상을 찍고,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전달하게 한다. 최근엔 변형도 시도했다. 유재석의 드럼 비트 위에 각각의 뮤지션이 피아노, 기타 등 한 파트를 맡아 소리를 더한다. 이 소리들이 합쳐지면 하나의 곡이 완성된다. 기존 방송의 제작과 촬영 방식을 벗어난, 유튜브식 개방형 콘텐츠다.

심지어 요즘 예능에 나오는 자막도 유튜브 콘텐츠를 따라한 것이 많다. 사람의 얼굴 전체나 특정 부위를 자음 삼아 단어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인정’이란 자막을 넣을 때 얼굴을 ‘o(이응)’으로 삼고 얼굴 근처에 나머지 글자를 넣는 식이다. 유튜브처럼 신선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곳곳에 배치하려는 의도다.

이 같은 시도들은 결국 뉴미디어에 빼앗긴 젊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방송은 획일화된 틀 안에서 움직여 왔다. 그 안에서 미세한 변동은 있었지만, 최대한 익숙한 걸 재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시청자들이 처음 보는 콘텐츠를 만드는 파격적인 시도는 시청률 등을 이유로 기피했다. 그렇게 안정을 취해온 시간이 쌓이고 쌓여 결국 뉴미디어라는 거대한 위협과 마주하게 됐다. 특히 새로운 것에 금방 시선을 빼앗겨 버리는 젊은 층이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다시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지금까지의 흐름만으로는 긍정적이지 않다. 여전히 한편에선 기존 공식을 답습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다. 유튜브의 방식을 한발 뒤늦게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다시 주도권을 찾기 힘들다. 무엇이든 선점하는 자에게 더 많은 관심과 큰 영광이 주어지는 법이 아니던가.

문영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디퍼런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차별화’는 전술도,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올드미디어가 가야 할 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드’한 눈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이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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