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는 커플이여, 시그나기 성벽 '사랑의 망루'로 가라

입력 2019-10-13 15:30   수정 2019-10-13 15:31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시

트빌리시에서 2시간을 떠나온 낡은 밴이 자그마한 시그나기((Sighnaghi)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섰다. 알록달록한 건물로 둘러싸인 아담한 광장을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느릿느릿 돌아가는 시그나기의 첫 모습을 마주했다. 조약돌이 알알이 박힌 언덕길을 낑낑대며 올라가자 우직한 자태로 서 있는 성문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너머로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해발 800m 구릉에 자리한 시그나기는 조지아의 여타 다른 도시와는 그 모양이 사뭇 다르다. 마을을 아늑하게 에워싼 기다란 성벽과 파스텔 톤의 가옥들이 줄지어 선 삐뚤빼뚤한 골목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워 누운 돌담의 풍경은 언뜻 서유럽의 작은 성벽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시그나기는 과거 조지아에서 무역과 상업의 거점도시 역할을 해왔다. 18세기 초, 당시 왕이었던 헤라클리우스 2세(Heraclius)가 약탈을 일삼는 주변 부족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쌓아 올리고 23개의 망루를 설치하면서 지금의 도시 형태가 갖춰졌다. 마을 규모가 워낙 작은 탓에 별다른 목적지 없이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것이 시그나기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자세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성벽의 길이는 5㎞가량에 달하지만 공개된 구간은 한정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여유롭게 성곽길을 산책하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망루의 정상에 올라섰다. 바로 옆 망루에는 두 남녀가 함께 서서 시그나기의 풍경을 애틋하게 공유하고 있다. 문득 이 마을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은 ‘사랑의 도시(City of Love)’라는 것이 떠올랐다. 시그나기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사랑의 도시’라는 이름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시그나기의 지리적 형태가 하트 모양이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시그나기라는 이름이 사랑을 뜻하는 조지아어에서 기원한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일 뿐 사실은 아니다. 과거 많은 커플이 시그나기로 사랑의 도피를 떠나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시그나기에서는 24시간 내내 혼인신고가 가능하고, 그 절차도 굉장히 간소해 지금도 많은 커플이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발아래 펼쳐진 시그나기의 풍경을 보는 순간 도시가 지닌 별칭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댄 붉은 지붕들과 대롱대롱 매달린 파스텔 톤의 테라스,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진 알라자니 계곡과 그림 같은 코카서스 산맥의 풍경이 이곳이 왜 사랑의 도시인지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만 송이 장미의 주인공

시그나기 하면 조지아를 대표하는 화가인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피로스마니는 1862년, 시그나기 근처의 작은 마을 미르자니(Mirzaani)에서 태어났다.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에 따르면, 선술집의 간판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던 피로스마니는 조지아를 방문한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그는 가진 모든 것을 내다 팔아 수많은 장미를 샀고 마르가리타가 묵던 숙소 앞을 꽃밭으로 단장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고 피로스마니는 평생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애절한 그의 짝사랑 이야기는 추후 많은 예술가의 영감이 됐다. 라트비아 노래에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붙여 완성된 ‘백만 송이 장미’가 대표적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래의 멜로디 속 주인공이 바로 피로스마니다. 사실 그의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즉, 알려진 대부분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와는 무관하게 피로스마니의 작품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워낙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던 그는 오로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따뜻하고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수많은 작품을 그려냈고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프리미티즘(primitivism)의 대가로 발돋움했다. 비록 많은 비운의 천재들의 일생처럼 살아생전에는 그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시그나기 박물관 2층에 마련된 피로스마니 전시관에는 총 13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조지아의 목가적인 풍경과 당시 민중들의 생활상을 그려낸 초기작을 비롯해 ‘타마라 여왕’을 포함한 초상화 작품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감상을 끝냈다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박물관 옥상에 오르는 것도 잊지 말자. 피로스마니의 동화적인 색채의 원천이 된 카헤티 지방의 황홀한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성녀 니노의 기적이 살아 숨 쉬는 곳

마을에서 2㎞가량 떨어진 보드베 수도원으로 향한다. 차를 타고 가면 10분 남짓한 거리지만 시간이 느리게 굴러가는 시그나기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싱그러운 오솔길을 걸으며 천천히 수도원을 향해 걷는다. 사랑스러운 마을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의 노랫소리 그리고 풀을 뜯는 양 떼들이 곁을 대신한다. 어느새 눈앞에는 수도원의 높은 담장이 나타나고 그 위로는 진한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

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하얀 눈이 쌓인 코카서스 산맥이 훤히 보이는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한 보드베 수도원의 본래 이름은 ‘성녀 니노의 보드베 수도원’이다. 성녀 니노(St. Nino)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래한 인물로 조지아 정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전설에 따르면 카파도키아 출신인 니노는 신의 계시를 받고 조지아로 건너와 죽어가는 아이를 소생시키고 병자를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한다. 이런 소문은 조지아 왕비에게까지 전달됐고 불치병을 앓고 있던 왕비는 니노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해 주길 부탁한다. 니노의 기도로 병이 완치된 왕비는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고 니노는 기독교로 개종해 줄 것을 청한다. 선교를 위해 평생을 힘쓴 니노는 보드베 계곡으로 돌아와 은수자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후에 수백 명의 장정이 그녀의 유해를 므츠헤타(Mtskheta)로 옮기려 했지만 유해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이곳에 영원히 잠들게 됐다. 둥그런 아치형의 정문을 지나자 곱게 단장된 안뜰과 성녀 니노의 유해가 모셔진 게오르기 수도원이 보인다. 4세기께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진 이래 역사의 굴곡을 따라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 19세기께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 뒤로는 새로 건설되고 있는 성 니노 성당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언덕의 경사를 따라 조성된 정원 앞에는 알라자니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수도원으로부터 돌담길을 따라 1㎞가량 내려가면 나오는 성 니노의 샘도 가볼 만하다. 치유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지금도 많은 사람이 니노의 기적을 쫓아 이곳을 찾는다.

8000년의 세월을 머금은 와인

조지아는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만든 국가다. 무려 8000년의 역사를 지닌 와인을 맛보는 일은 조지아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시그나기와 텔라비(Telavi)가 위치한 카헤티(Kakheti) 지방은 조지아에서도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비옥한 코카서스 산맥의 토양과 흑해 연안에서 불어오는 온화하고 수분 가득한 바람은 좋은 품질의 포도를 재배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조지아인들에게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손님을 환대할 때도 작별을 할 때도 그들은 언제나 와인을 내놓는다. 조지아 어딜 가나 포도나무 문양이 새겨진 장식품들을 볼 수 있고, 국가를 상징하는 십자가 문양에도 탐스러운 포도나무가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와인은 조지아인들에게 역사이자 문화 그리고 그들 삶에 깊이 뿌리박힌 긍지와도 같은 것이다. 조지아의 전통 와인 양조 방식을 ‘크베브리(kvevri) 방식’이라 일컫는다. 크베브리란 물방울처럼 끝이 뾰족한 점토 항아리를 뜻한다. 잘 여문 포도를 껍질째 혹은 줄기째 으깬 뒤 항아리 안에 넣는다. 입구를 진흙으로 단단히 밀봉해 땅에 묻은 후 4~6개월간 숙성시키면 그 유명한 조지아 와인이 탄생한다. 아직도 상당수의 와이너리와 가정집에서는 크베브리 방식을 계승해 와인을 양조한다. 2013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시그나기에서 음식과 와인이 맛좋기로 소문난 한 식당을 찾았다. 세월의 때가 묻은 기다란 나무테이블에 앉자마자 인상 좋은 주인장 아주머니가 곧장 므츠바네, 사페바리 등 조지아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여러 잔 내온다. 그중 크베브리 방식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색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브랜디처럼 진한 호박색을 띠는 것이 특징인데 색만큼이나 짙은 풍미에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자꾸만 잔을 홀짝였다. 시그나기에 왔으니 ‘피로스마니 와인’을 맛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40%의 트솔리카우리(Tsolikauri)와 60%의 트지스카(Tsitska) 품종을 섞어 만든 백포도주로 묵직하고 드라이한 맛이 일품이다. 차차(Chacha)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차차는 발효시킨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의 일종으로 와인만큼이나 조지아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어느새 기다란 나무 식탁에는 동네 주민들로 가득 찼다. 흥이 오른 주인장이 전통 음악을 틀더니 장미를 섞어 만든 차차를 멋들어진 은색 잔에 담아 쟁반 가득 내어온다. 조지아에는 전통 건배 문화인 ‘타마다(tamada)’가 있다. 타마다는 저녁식사 혹은 연회를 뜻하는 수르파(surpa)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식탁 끝에 앉은 덩치 좋은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어 올린다. ‘사랑을 위하여! 가오말조스(건배)!’라는 힘찬 외침과 함께 잔을 들이켰다. 입안으로 장미 향이 가득 퍼지고 창밖의 하늘은 포도주에 적셔진 식탁보처럼 붉게 물든다. 사랑의 도시 시그나기의 밤이 농익어 간다.

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instok@naver.com

여행 정보

수도 트빌리시에서 시그나기까지는 차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조지아의 대중 교통수단 격인 마슈로카를 이용해 시그나기로 이동하고 싶다면 트빌리시 메트로 삼고리 역으로 가면 된다. 시그나기에서 보드베 수도원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없다. 자가용 혹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9월 중순~10월은 카헤티 지방의 포도 수확이 이뤄지는 달로 많은 축제가 열리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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